야만성과 고소함 사이
점심을 먹고 곧장 친정집에 가기로 했다. 목적은 전날 야식으로 족발을 먹고 남은 뼈를 친정집 고미에게 주려는 것과 산책이었다. 고미는 주말마다 우리와 함께 걷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를 기다렸을 게 분명했다. 마당에 웅크리고 있던 고미는 차가 친정집에 들어서자 한 뼘도 안 되는 꼬리를 흔들고 펄쩍펄쩍 뛰며 반겼다. 족발 뼈를 주니 보물이라도 되는 양 마당 한구석을 파 소중히 묻어둔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묻어둔 뼈를 꺼내서 맛있게 먹는 척했다. 그런 나를 보고 고미는 돌려달라는 듯 낑낑거리기만 할 뿐 크게 짖지는 않았다. 계속하면 정말로 울 것 같아서 뼈를 돌려주고 산책을 나섰다.
산책을 다녀오니 해가 질 것 같았다. 엄마와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겨울은 방어를 먹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진까지 40분, 생선 고르고 회 뜨는데 40분, 돌아오는데 40분. 2시간이면 충분히 저녁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기 전에 서둘러 주문진으로 향했다.
주문진에 도착하니 겨울이라 그런지 큼직한 방어들이 가게 수조마다 한 마리씩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방어가 보이지 않았다. 방어는 기름진 생선이라고 하지만, 작은 알방어라고 부르는 새끼 방어는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다. 흔히 말하는 ‘기름진 방어’를 먹으려면 적어도 5kg은 넘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방어는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 마리를 몇 접시로 나눠 팔거나, 여러 명이 함께 먹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선뜻 고르기 어렵다. 아이를 제외하면 성인 세 명인 우리 가족에게 알방어는 양으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맛은 알방어의 맛이 아니다.
몇 군데 더 둘러보니 마음에 쏙 드는 방어를 발견했다. 크기는 1m 정도이고 가격은 십오만 원이다. 흥정하려는데 가게에서 먼저 십이만 원에 팔겠다고 한다. 생선도 가격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자, 참가자미도 세 마리나 얹어주겠다고 한다. 옆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던 팀이 눈을 반짝인다. 좀 더 망설이면 저들이 잽싸게 채갈 것 같아서 바로 결제했다.
저 크고 힘 좋은 방어를 어떻게 회 떠주는 곳까지 가지고 가려나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가게 사장님은 수조에서 방어를 꺼내 아가미 사이로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힘차게 좌우로 퍼덕이던 몸통이 움찔거리며 붉은 피를 쏟아냈다. 몇 번 더 몸을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커다란 생선이라 그런지 바닥으로 흐르는 피의 양이 커다란 들짐승을 연상시켰다. 낚시하며 작은 생선을 손질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야만성이 그 장면에 서려 있었다. 회는 어쩌면 그런 감정을 안고 먹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저녁 시간에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초밥밥을 만들기 위한 초대리를 샀다. 회의 양이 많으니, 회만으로는 금세 질릴 것 같아 다양한 방식으로 먹기 위해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솥에 밥을 얹고 저녁상을 준비했다. 찍어 먹을 것도 초장, 고추냉이 간장,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섞은 쌈장까지 세 종류를 준비했다.
우선 가장 기름지고 씹는 맛이 좋은 뱃살을 간장에 찍었다. 살점이 간장에 닿자마자 간장의 표면 위로 방어 기름이 퍼졌다. 아삭아삭한 뱃살은 씹을 때마다 살에서 기름이 흘러나와 고소했다. 날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보다 고소한 생선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꼬릿살. 꼬릿살은 초장에 찍었다. 뱃살에 비해 기름기는 적지만 육질이 쫄깃하다. 치아를 밀어내는 탄력이 남다르다. 마지막 등살은 마늘 쌈장을 올려 입에 넣는다. 자칫 비릴 수도 있는 혈합육의 맛을 다진 마늘이 잡아준다. 등살은 뱃살이나 꼬릿살보다 담백해서 혈합육의 맛이 강하다. 큼직하게 썰어 입안 가득 방어의 맛을 느끼기 좋다. 사잇살이라고도 불리는 혈합육은 등푸른 생선의 등 쪽이나 뱃속 중심부에 가까운 검붉은 살코기 부분이다. 예민한 사람은 피 맛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육사시미에 가까운 맛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혈합육이 방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기름진 회 맛에 슬슬 질리기 시작할 때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밥솥이 외친다. 타이밍이 좋다. 이제 초밥을 쥘 시간이다. 갓 지은 따끈한 쌀밥에 넉넉히 초대리를 부어 초밥용 밥을 만든다. 나는 초밥밥이 새콤한 쪽을 좋아한다. 위에 올릴 방어가 워낙 기름지니 평소보다 초대리를 좀 더 넉넉히 넣었다.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밥을 섞다 보면, 그릇에 고여있던 초대리가 어느새 쌀알 속으로 스며든다. 원래는 한 김 더 식혀야 밥풀이 손에 달라붙지 않지만, 성질 급한 나는 손에 초대리를 바르는 것을 선택한다. 손에 초대리를 발라가며 초밥을 쥐면 밥알이 손에 붙지 않는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몸으로 익힌 요령이다. 너무 세게 쥐면 떡지니 손끝에만 살짝 힘을 주어 모양을 내고 고추냉이를 얹어 밥만 접시 위에 올린다. 밥 위에 어떤 부위를 올릴지는 먹는 사람의 자유다. 이게 우리 집 표 초밥이다.
나는 초밥 위에 올릴 생선으로 뱃살을 선택했다. 얇게 썰려있어 두 점을 올렸다. 입에 들어간 초밥은 부드럽게 풀렸다. 성공이다. 초밥밥 덕분에 생선이 기름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초대리를 넉넉히 넣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초대리를 너무 많이 넣어 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고추냉이 덕분에 균형이 잘 잡혔다. 다섯 개만 먹겠다던 엄마는 두 개만 더, 하나만 더 하시더니 벌써 열 개째다. 엄마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남편은 늘 그렇듯 여전히 잘 먹는다. 그는 대방어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기대했었는데, 실패하지 않은 것 같다.
마무리는 마지막까지 남은 회를 처리하기 위해, 늘 그렇듯 회덮밥이다. 미리 퍼 놓고 한 김 식힌 밥 위에 냉장고 속의 자투리 채소를 모두 꺼내 적당한 크기로 채 썰어 올린다. 그리고 양껏 먹어 질린 회를 넉넉히 올리고, 초장과 참기름을 뿌려 비빈다. 회덮밥을 만들 때 나의 꿀팁은 참기름을 좀 넉넉히 넣는 것이다. 그러면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초장의 시큼함을 상쇄한다. 양념장을 따로 만들면 더 맛있을 테지만, 이미 부른 배로 양념장을 만드는 귀찮음을 이겨낼 수 없기에 고안해 낸 방법이다. 다른 회라면 그대로 집어넣어 비비겠지만 회의 크기가 큼직해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었다. 잘 비벼진 방어 회덮밥을 크게 한입 욱여넣었다. 여러 부위를 집어넣었더니 씹는 맛이 달라 식감이 재미있다. 회덮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회로 가득 찬 배를 두드리며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배는 부르고 바닥은 뜨끈뜨끈하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늘 그렇듯 엄마와 나는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수산시장에서 방어를 사 올 때 느꼈던 야만적인 감정은 이미 방어 기름 속에 풀려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겨울은 이렇게 지나가고, 다음 겨울에도 우리는 다시 방어를 사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