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엄마에게 배우는 수육
김장 날엔 절대 빠질 수 없는 메뉴, 바로 수육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설로 만든 수육을 가장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삼겹살이나 목살로 만든 수육이 맛있다고 하지만 내게 최고의 수육은 바로 우설 수육이다. 우설은 소의 혓바닥으로 흔치 않은 부위다. 나와 엄마는 예전부터 내장이나 소머리 같은 부속 고기를 좋아한다. 맛도 맛이지만 커다란 소 한 마리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특수 부위라는 희귀함도 마음에 든다.
김장 날에 맞춰 수요일에 주문한 우설은 다음날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지만, 늦는 것보다는 낫다. 도착하자마자 아이스박스째로 냉장고에 넣어둔 우설을 꺼내보니 손질할 것도 없이 깨끗하다. 예전에 도축장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울대까지 붙어있는 우설을 샀던 적이 있다. 그땐 저렴했지만, 손질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서 손질하느라 꽤 고생했다. 그 고생스러운 작업을 생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에 우설을 통째로 넣고 마당 한켠에 있는 캠핑용 해바라기 버너에 불을 켰다. 맹물에 끓이는 수육이 의아해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넣는 거냐 물으니, 우설은 너무 부드러워서 처음부터 뭘 넣고 끓이면 고기가 질겨진다고 한다. 음식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엄마 따라가려면 멀었다.
한번 와르르 끓은 물에 엄마가 이것저것 넣기 시작했다. 파, 사과, 배, 양파껍질. 근데 중요한 한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수육을 할 때 꼭 들어가는것 쌍화탕이다. 쌍화탕에는 당귀, 감초, 황기, 작약, 생강, 숙지황, 대추, 계피 등이 들어있다. 이 한 병만 넣어도 다른 재료 없이 고기 특유의 잡내를 충분히 잡아준다. 이보다 가성비 좋은 재료가 없다. 그런데 이번 우설 수육에는 쌍화탕을 넣지 않았다. 엄마에게 쌍화탕은 넣지 않는 거냐 물으니, 기본 재료가 좋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엄마에게 하나 더 배운다.
수육을 올려두고 본격적으로 김치를 버무렸다. 김치를 버무리는 동안 수육이 끓고 있었고 마당 한가득 맛있는 고깃국 냄새가 가득했다. 김장이 마무리되니 수육도 얼추 다 익었다. 김장하느라 지저분해진 마당을 정리하고 해바라기 버너의 불을 껐다. 뚜껑을 여니 잘 익은 수육 냄새가 코를 찌른다.
조금 식힌뒤에 자르려고 고기를 건져 올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우설이 손질되어 있지 않다. 우설은 표면에 살짝 두껍고 껄끄러운 껍질이 한 겹 있는데 그걸 벗겨내야 한다. 다 벗겨진 상태로 배송된 건 줄 알았는데 껍질이 벗겨졌는지 착각할 정도로 깨끗하게 씻어서 배송된 것이었다. 혹시나 해 껍질을 벗겨보니 다행히 잘 벗겨진다. 좀 뜨겁긴 하지만 맛있는 수육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뜨거움쯤이야 참을 수 있다. 오히려 푹 익혀낸 덕분에 손질이 수월하다. 벗겨낸 껍질은 마당의 동경이에게 간식으로 던져줬다. 산해진미라도 주는 양 연신 꼬리를 흔들며 맛있게 먹는다.
껍질을 벗긴 고깃덩이를 한 김 식히고 먹음직스럽게 자르기 시작했다. 일반 수육처럼 두툼하게 자르려고 하니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우설은 너무 두꺼우면 안 된다며 얇게 썰라고 하신다. 최대한 얇게 썰어보지만 쉽지 않다. 하루 종일 김장하느라 힘들었을 엄마에게 고작 수육 자르는 것까지 맡기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서툴지만 끝까지 썰었더니 두께가 들쑥날쑥이다. 이제 곧 마흔인데, 아직도 칼질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계속 옆에서 지켜봤나 보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아기다.
열심히 썰어놓은 고기를 접시에 담고, 오전에 담가놨던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내 꼭지만 잘라내 길게 찢어서 상 위에 올렸다. 이제 함께 먹을 사람만 모이면 된다. 수육이 식기 전에 서둘러 신랑과 아이를 불렀다. 작은 식탁에 네 명이 둘러앉아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우설 수육은 육질이란 게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웠고 먹고 나면 입술이 번들거릴 정도로 기름졌지만 느끼하지 않다. 수육과 함께 먹는 김장김치는 꼭지를 잘라내어 참기름과 참깨를 더 넣고 버무려서 먹는 게 더 고소하고 맛있다. 하지만 우설 수육과 함께 먹는 김장김치는 참기름과 참깨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이미 충분히 우설이 기름지기에 참기름을 넣으면 과하게 느끼해진다. 정도가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논어에서도 말했다. 논어에서 나온 말을 수육과 김치에 빗대어 말할 것을 공자도 몰랐을 거다.
한 접시 가득 있던 수육과 김치는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도 부른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에 젖었다. 기름이 흥건한 접시들을 닦으며 일 년에 한 번뿐인 행사가 끝났다. 내년에 있을 김장 날이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