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짜장면이 있던 토요일
오늘따라 점심을 사먹으러 나가기가 귀찮다. 매일 점심을 먹으러 다니던 한식뷔페집이 계약만료로 몇 달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점심때마다 여기저기 식당을 전전한게 한달이 다 되어간다. 농공단지 내에 있는 구내식당은 맛이 없었고, 주변에 몇 개 안되는 식당은 이미 질렸다. 그래서 며칠째 간단히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오늘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깐 눕는다는게 잠이 들어버렸다. 그 바람에 도시락도 챙기지 못한 채 허둥지둥 출근해야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는 싫어서 시아버지와 남편을 꼬셔 짜장면을 시켜먹자고 했다. 추운 날씨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게 싫었는지 모두들 그러자고 했다.
종종 시켜먹는 중국집에 짜장면 세 개와 짬뽕 한 개를 주문했더니 30분만에 도착했다. 그릇을 받아 드는데, 일회용기가 아니라 플라스틱 그릇이었다. 지금이야 배달어플을 이용하면 깔끔한 일회용기에 담겨온다. 하지만 내가 어렸던 90년대에 배달이 되던 가게는 치킨집, 족발집, 중국집이 전부였다. 치킨집은 종이박스에, 족발집은 커다란 채반에, 중국집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왔다. 다 먹고나서 종이박스는 버리면 되고 채반은 사용하면 됐지만 플라스틱그릇은 회수를 했다. 그래서 늘 짜장면은 먹고나면 그릇을 정리해서 대문밖에 놓아두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맞벌이 부부셨다. 형제가 있던것도 아닌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혼자 놀았다. 다행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늘 하굣길에 학교 앞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서 집에서 책을 봤다. 평일엔 한 권쯤 읽으면 부모님이 집에 오셔서 다같이 저녁을 먹었지만 토요일이 문제였다. 혼자인 것은 책을 읽거나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면 되니 걱정이 없었지만, 문제는 밥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때까지는 할머니와 같이 살아서 크게 밥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2학년때는 우리집도 분가해서 살았기 때문에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토요일은 학교에서 점심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 밥을 차려먹지도 못했다. 전기밥솥이 있었다면 혼자 챙겨먹는게 수월했겠지만, 그때의 어려운 형편에 전기밥솥은 사치였다. 그래서 토요일에 집에 돌아오면 티비앞에는 늘 오천원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티비앞에 놓여진 오천원으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라고 했다. 혼자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할 수 있을때까지 몇 번이고 연습을 했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혼자 밥을 차려먹을 수 있게 되었던 3학년까지 일년동안 토요일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지금도 매운 것을 잘 못먹는 나는 짬뽕은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 늘 토요일은 짜장면이었다. 매번 짜장면을 먹으면 질릴법도 한데, 어린 내 입맛에 달콤한 짜장소스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토요일을 기다리기도 했다. 질렸다면 꾀를 내어 오천원으로 다른 무언가를 먹었을 것이다.
일찍 철이 들었던 나는 우리집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한걸 알았기에 오백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사는것도 내 딴에는 아주 큰 결심이었다. 그 시절 짜장면 값은 이천오백원이었다. 엄마가 놓고 간 오천원으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먹고 나면, 남은 돈은 등교할 때 쓸 회수권을 사고 다음 토요일까지 쓰는 용돈이 되었다. 짜장면을 먹지 않는다면 오천원이라는 큰 돈으로 할 수 있는게 많았지만 토요일의 특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방학만 되면 멀리 서울에서 속초까지 오셨다 가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서울에 사셨는데 방학때면 꼭 우리집에 오셨다. 오셔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보름정도 왔다가셨다. 그때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었던 것은 나다. 그때에는 나도 밖에 나가서 동네친구들과 놀고 싶었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서 귀찮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놀아준 것은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탄 채 여기저기 다니셨다.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집 앞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고, 매일매일 코스를 바꿔가며 설악산을 오르내리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며 오색약수터에도 갔다. 고성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통일전망대에 가서 할아버지의 고향인 원산방향을 말없이 한참 바라보기도 하셨다.
할아버지가 어디 가자고 할 때마다 귀찮고 싫어서 밍기적거리던 나에게 할아버지가 내민 카드는 짜장면이었다. “가서 점심으로 짜장면 사줄게.”라며 나를 꼬셨다. 그때의 나는 짜장면보다는, 내가 안가면 혼자 가실 할아버지가 안돼보였다. 나중에 할아버지를 거절했다며 아빠에게서 떨어질 불벼락도 무서워 결국 따라나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짜장면에 홀랑 넘어간거라 생각하셨는지, 내가 고등학생때쯤 “수정이는 짜장면을 참 좋아했지. 짜장면 사준다고 어디 가자고 하면 꼭 쫒아왔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할아버지가 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런 어릴적 생각들을 하다가 왜 하필 지금, 이 계절에 그 여름의 수박이 떠올랐다. 이 추운날 짜장면을 먹으면서 수박을 떠올리는 건 계절에 맞지 않다. 지금이 여름도 아니고, 수박이 나올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음식은 다른 계절의 기억을 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