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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

by 상아

어엿한 옛날, 초등학생 때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눈맞춤과 함께 누군가 발표해야할 시간이 되면 식은땀이 흘렀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손을 들고 싶은데 틀릴까. 머릿속에서 떠올린 생각을 몇 번이고 뱉었다가 주워담았다.


평소 자처해서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들기만 하면 백발백중, 이름이 불렸다. 되생각질 하던 말을 그대로 내보내면 될뿐인데 이상하게 변변찮게 변수가 출력됐다. 깔끔하고 또렷하게 발표를 마친 상상과는 다른 괴리와 함께 긴장 상태가 소강하며 삐죽했던 머리가 싸-하게 시원해지는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덥지 못한 기억력에 캡처부터 해버리는 습관이 있는 지금과 달리 어려서 불안했고, 아쉽지만 안도했던 기억들은 유난히 흔적이 짙다.


옛날이라고 하기도 멋쩍은 대학시절, 어느 날 목에서 양 한 마리가 생겨났다. 믿을 구석은 작디작은 폰 안에 담긴 나의 대본. 시작한 지 채 오분이 지나지 않아, 이 공간에 울리는 생경한 소리와 모두가 나를 주목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끝날 시간을 가늠해보니 아득했다. 사투리 억양이 섞인 높낮이가 깊이를 파고 들고, 끝을 맺을지 모르는 서술어들이 갈 곳을 잃었다.


발표자가 당황할수록 청중의 이목이 끌린다. 심지어는 응원을 받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이윽고 끝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목에 양이 있나봐" 라는 한 마디에 동기들 모두가 빵 터졌다. 사려깊은 아이들 같으니라고, 모른척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나보다.


아이가 간밤에 성장통을 겪으며 한뼘 더 커가고, 자꾸만 땅에 발이 아닌 몸이 닿으며 자전거 타는 감을 익혀갈 때쯤, 우리는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뇌의 허락과 심장의 만류 속에 에라 모르겠다 들어올려진 팔과 그 순간 횡단보도 없는 비탈길처럼 누구보다도 자유 분방했던 나의 성대에서는 박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둥 둥 새벽녘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계바늘 초침처럼 속에서 튀어올라 귓바퀴에 닿던 소리, 일련의 (일명) 박동 사건들 후에 발표 전에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본은 일찌감치 저편에 버려두었고, 실전처럼 네다섯번을 소리내서 말하다보면 한 마디 읊고 말문이 막히던 것에서 한 두 문장은 제법 또렷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도 대학원 수업 발표를 위해 오후 다섯 시부터 두 시간이 되도록 침삼키는 목구멍이 따끔하게 마디, 문장, 문단을 조금씩 다르게 정열했다. 결과는 오늘 또 양 한 마리 출연. 동물 농장이 따로 없다. 앞에 앉은 청중의 응원 섞인 끄덕임이 갈수록 잦아진다. 그래도 감추고자 여유부린 눈빛과 잠시 숨 고른 틈새는 '눈치 못 채겠지.' 하며 또다른 뜀박질을 시작한다. 1인칭 속의 떨림이 언젠가는 설렘으로 울려퍼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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