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불행

아픈 손가락

by 상아

첫 키스만 50번째 주인공처럼

함께 있지만 추억할 수 없고

여느 때처럼 공전하는 달과 지구처럼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좁혀지지 않는


말하자면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을 빤히 보지 않는 게 일종의 매너인 것처럼

집 안에서도 애써 흐리게 보아야 하는 마음을 누가 알까

가장 편해야 할 공간에서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배려는 그곳을 그렇지 못한 곳으로 만든다


외설과 폭력성이 나오는 유튜브 광고보다 코에 튜브를 꽂은 채 누워 있는 사람을 보여주는 후원 광고를 보며 빨리 스킵을 누르는 심리가 이것이 아닐까

예쁘지 않은 것, 나와 같지 않은 것에는 눈길을 빨리 거둬주어야 하니까

그게 요즘 '매너'니까


현실을 마주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땐 관심 없었고

좀 전까지는 피했으며

이제야 똑바로 보게 되었다


솔직함이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어린 날, 한 번은 가족 외식 자리에서 술을 먹고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견뎠어?”

곱창을 먹던 엄마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엄마한테는 사실 좀 식상해"

"응?"

"새삼스럽게"


아, 스물다섯에 결혼을 해 부푼 마음으로 첫 아이를 낳고 매일 육아 일기도 빼놓지 않고 쓰던 그녀. 언젠가부터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아이를 안고 병원에, 센터에, 학교에 직장과 병행하며 키워냈던 여자. 삼십여 년의 세월 앞에 이 모든 불행은 그만 상했다. 생생하게 팔딱거리는 장애물에 막혀 친구를 멀리하고 직장에 몰두하며 고군분투하던 여인 앞에서 이제는 흐물 하게 뉘어 식상해져 버린 것이다.


그 앞에서 감히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 있다.


그게 사람이든, 관계든, 질병이든, 성격이든, 마음이든, 가족이든 간에.


365일 중에 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지만 가끔 형태 없는 불안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성치 않은 손으로 물장구를 헤쳐나갈 생각에 겁이 날 때면 이것만 기억하자. 모든 걸 극복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겨내지 않아도, 때때로 지더라도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더라도 버티기만 한다면 잘 살 수 있다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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