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령액 300만 원, 정규직 큐레이터

by 일용직 큐레이터

13년간 큐레이터로 살았다.

국립박물관, 사립 박물관, 기업 박물관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았다.

월 300만 원, 정규직 큐레이터가 되었지만 퇴사 후 부산으로 이사.


악몽은 부산에서 시작된다.



대학 졸업 후 국립박물관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월급 100만 원, 연봉 1,200만 원.

고시원 30만 원, 생활비 20만 원을 쓰고 50만 원을 저축했다.


남보다 늦었지만 대학원을 가리라.

1년 반을 일하며 등록금을 모았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학교 박물관에서 일하며 매달 25만 원을 받았다.

서른이 가까운 나이었지만 어머니께 손을 벌렸다.


아버지를 잃고 일용직으로 사시던 어머니.

아들 생활비 때문에 금붙이까지 파셨단다.

몹쓸 아들놈.


죽어라 공부해 5학기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3급 학예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모 연구원에 입사했다.

연봉은 2,200만 원. 연봉을 13으로 나누어 12는 월급으로 받았다.

나머지 1을 반으로 나누어 추석과 설에 상여로 받았다.


실수령액은 150만 원.

출장을 많이 찍은 달은 200만 원.


여자 팀장이 괴롭힌다.

"이발해라."
"손톱 잘라라."
"신용카드 왜 그거 쓰냐."
"일요일에 출근해 출장준비 해라."
"퇴근 후 외출하지 마라."


1년을 꾹 참고 퇴직금 받고 퇴사했다.



기업 박물관에 입사했다.

희망연봉을 말하라기에 2,400만 원을 제시했다.

대표가 그 자리에서 ok 한다. 3,000만 원 부를걸 후회된다.


9년을 일했다.

책임 큐레이터로 전시팀을 이끌었다.

5개의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를 운영했다.

매해 4~5개의 전시를 열었다.


월급은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랐다.

나이 마흔. 월급 300만 원.



눌러앉으면 10년 후 어떻게 될까?

나이 오십. 월급 400만 원.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부산으로 향했다.


내 악몽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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