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살같이 박힌 우울증

by 일용직 큐레이터

몇 년 전 코로나가 횡횡하던 때. 처음으로 우울증을 겪었다. 사무실에 앉아 회의하는데 속이 울렁이고 눈이 흐려졌다. 몸은 긴장되고 심장은 바삐 뛰어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었다. 의자를 박차고 나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조금 안정되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뭔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인가 보다 했다. 이런 적은 없었지만 그럴 수 도 있다 여겼다.


여러분, 제가 말이죠. 우울증 전도사입니다.

<라디오스타>에서 MC 김구라가 하던 말이다. 본인의 우울증을 유쾌하게 드러내고 개그로 승화시켰다며 자화자찬한다. 우울증은 마음 약한 사람이 겪는 감정기복이라 여겼다. 내면을 튼실히 다져 놓으면 우울증 같은 게 올리 없다.


길을 걷는데 또 울렁임이 시작됐다. 울컥하고 무언갈 쏟아낼 것 같다. 헛구역질만 할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100%였던 배터리가 갑자기 0%로 방전되듯 힘이 쭉 빠진다.


무섭다

나쁜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무섭다. 정신은 그만하라는데 몸이 반응한다. 우울증 상담을 검색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너무 긴장되고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 되냐 물었다.


다들 대상이 아니라며 전화를 돌렸다. 딱 한 곳만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일단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해보세요.

그러셨구나. 얼마나 힘드세요. 상담사와 대화를 이어가며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첫 우울증이 시작됐다.


우울증은 화살처럼 박힌다. 평소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팍에 화살이 박혔다. 그 화살을 빼내려 몸부림치지만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우울증입니다. 약 드셔야 해요.

처음으로 정신병원이란 곳을 찾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이것저것 검사 하더니 우울증 판정을 내렸다. 병원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환자들이 앉아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한 달간 회사를 휴직했다. 코로나로 경영이 악화되어 돌아가며 쉬기로 했다. 다행이다.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생겼다.


집 근처 허름한 방을 잡았다. 에어컨도 없는 고시원으로 화장실도 공용이다. 한 달에 15만 원. 난 매일 고시원으로 출근했다. 노트북 하나 들고 말이다.


고시원 책상에 앉아 무작정 글을 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연애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글만 썼다. 많게는 하루 10개 넘는 글을 썼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치 않았다.


내면에 있는 응어리를 쏟아내듯 글을 썼다. 집중을 하니 긴장감이 사라졌다. 쏟아내니 기분이 나아졌다. 한 달간 쓴 글이 수백 편이다. 모두 블로그에 올렸다. 혼자 5개의 블로그를 운영했다.


블로그로 적게는 수십만 원, 많을 때는 몇백만 원을 벌었다. 휴직을 끝내고 복귀한 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천 개의 글이 쌓였다. 어떤 달은 월급보다 많은 수익을 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울증은 화살처럼 박힌다. 박힌 화살은 깊고 큰 상처를 낸다. 힘으로 화살을 뽑았다간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다. 부러뜨리면 안에서부터 곪는다.


살살 달래며 뽑아야 한다. 뾰족한 화살 끝을 살살 흔들어, 더 베이지 않게 뽑아내야 한다. 우울증은 화살처럼 박히지만, 뽑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상처는 남는다. 상처에서 언제 또 고름이 터질지 모른다. 우울증은 그런 녀석이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