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생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1년 동안 온 힘을 다해 운영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불과 1년 전, 창업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이 회사가 나의 모든 것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균열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몇 달 전부터 회사 내부에서 작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틈은 점점 벌어졌다.
겉으로 폐업을 선언하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 회사는 한동안 공허했다.
일은 계속 진행되었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회사의 방향성은 흔들렸고, 함께하던 사람들과의 신뢰도 옅어져 갔다. 나는 매일 고민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 회사를 계속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폐업을 결정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이제 나는 뭘 해야 하지?”
나는 이 회사에서 무려 1년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단순히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회사 운영, 프로젝트 기획, 인플루언서 브랜딩, 마케팅 전략 수립까지—이제 나는 온몸으로 사업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무엇일까?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하다
사실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수개월 전부터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부적인 균열이 점점 커졌고,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회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내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을 긴장한 상태로 지냈다. 회사 분위기는 점점 더 살벌해졌고, 더 이상 이곳에서 나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결국, 나는 폐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했다.
사업 실패가 남긴 것들: 피폐해진 삶과 자기 환멸
그렇게 사업이 실패했다. 하지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는 사실이었다.
함께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목표를 바라보던 사람들과 점점 생각이 달라지고, 엇갈리기 시작했다. 신뢰했던 관계들이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됐을까?”
“내가 더 노력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이미 하루 3시간씩밖에 자지 못하며 일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더 버텼어야 했을까?”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증오와 자기 환멸 속에 빠져들었다.
나 자신을 탓하다가, 함께했던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
나는 지금 내 멘탈을 붙잡아야 했다.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한 달 만에 다시 사업자로 서다
그리고 나는 폐업 후 한 달 만인 2023년 12월, 다시 사업자를 냈다.
남들은 12월에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비창업패키지 같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좀 더 준비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냥 바로 해버렸다.
기가 막힌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해보고 싶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동시에 운이 좋게도, 내 능력을 인정해줬던 기업들과 협업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그렇게 폐업 후 한 달 만에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프로젝트, 강의, 컨설팅을 병행하며 내가 가진 역량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미 바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절박한 몸부림의 그 끝은 번아웃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나는 완전히 지쳤다.
어쩌면 폐업의 충격을 회피하기 위해 더 미친 듯이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과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너무 열심히 버티고, 너무 빠르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1월. 결국 한달만에 나는 번아웃을 겪었다.
독감에 걸렸는데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휴대폰도 종종 꺼버렸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갇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업자로서 다시 서기 위해 한 발짝을 내디뎠지만, 나는 여전히 지난 1년의 후폭풍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