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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 이야기
상큼한 귤향기 가득한...
귤락(橘絡)
by
JULIE K
Dec 13. 2024
귤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 첫 수확한 조생귤이라기에 한 박스 사서 집으로 왔다. 깨끗하게 씻어서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서 비타민 섭취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는 양볼에 귤을 가득 넣고,
"이런 건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티브이 보면서 먹어야 하는데.. 과자랑 같이!" 라며 얘기했다.
10살짜리 꼬마의 감성에 깜짝 놀랐다. 어디서 본 적도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지 볼수록 놀랍다.
"엄마, 근데 여기 붙어있는 하얀 건 뭐야?"
"응, 그거? 귤에 붙어 있는 거."
껍질을 깐 귤을 입에 양껏 쑤셔 넣고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성의 없이 대답하고 나니 민망함이 몰려와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배야~~~!!!
내 웃음소리에 전염된 딸과 나는 계속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둘이 대화가 되는 게 이상한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의 한마디에도 아랑곳 않고 자지러지게 웃기 바빴다.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정도로 웃어대는 우리가 답답했는지 홀로 여유롭게 방콕생활을 즐기고 있던 아들이
슬금슬금 나오면서
말했다.
"그거, 귤락."
얘는 대체 뭐야... 뜬금없는 능력의 소유자답다.
그나저나 귤은 벌써 서너 개 깐 거 같은데 다 어디로 간 거야? 이런! 사춘기소년이
바
로
옆
에 서서 내가 깐 귤을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다.
"엄마, 수학여행은 수학공부하는 여행이야?"
저녁 먹기 전에 잠깐 TV를 보는데 지방에서 서울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딸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녀석은 지금 진지하다. 왠지 골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 여행 가서 수학공부만 하는 거야."
장난기 싹 뺀 모드로 무심히 대답하고 들켜버릴까 싶어 서둘러 주방으로 나갔다. 쪼르르 따라 나온 딸아이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수학여행만 있는 거야? 국어여행, 영어여행 이런 건 없어?"
"그러니까... 아쉽게도 아직은 없네? 국어여행 과학여행 같은 것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진지하다. 나는 진지하다...
"그런데 수학여행 가면 하루종일 공부만 해?"
"아니~ 어떻게 하루종일 공부만 하겠어. 자유시간도 주지."
"엄마는 어디로 갔었어?"
"엄마는 경주로 갔었지."
아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이토록 진지할 일인가? 녀석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싫은데... 수학공부만 하루종일 어떻게 해? 난 체육여행 가고 싶은데!!"
?????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꼬마
음... 이쯤 되면 녀석이 날 골려먹는 것인가?
어
디까지가 장난이고 진심인지 경계가 모
호
하다. 아마 녀석은 내 말을 진짜로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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