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둘
J가 한국에 왔다.
재작년 영국에서 보고 2년 만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여자는 마치 어제 헤어지고 오늘 또 만난 것처럼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 여행 가고 싶다."
"나도오~~! 넌 어디로 여행 가고 싶어?"
"뉴욕?"
"뉴욕!"
두 여자는 동시에 뉴욕을 외쳤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J와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가 갈망하는 것은 오직 딱 하나, '자유'였다.
"우리 진짜로 뉴욕이나 갈까?"
우스갯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두 여자는 어느새 진지해졌다.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우리의 여행 계획은 J가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뒤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생각이 곧 현실이 될 때
뜨거운 여름날이 시작될 무렵, 나의 마음은 공기층을 한껏 머금은 새털처럼 날아갈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누가 옆에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슝 하고 어디론가 대번 달려갈 것만 같았다.
때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마음 한편에 있던 자유를 향한 꿈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나의 간절함은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단 저질러보자!
오직 뉴욕만을 위한 계획이 시작됐다. 단지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이메일과 카톡으로 끊임없이 J와 연락을 취했다. 단순하게 휴식만을 원했던 J는 뭐든지 괜찮다고 했다. 여행계획에 권한이 생기자 여행책을 사서 본격적으로 뉴욕을 공부했다.
인생에서 자유로움을 빼면 시체였던 나는 오래전부터 뉴욕을 꿈꿔왔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서 봐왔던 도시는 어떤 곳인지 호기심이 가득 찼었다.
결혼 전에 회사에서 출장으로 아주 잠깐 스쳐 지나왔던 뉴욕은 한마디로 신세계였다. 본격적으로 그곳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준비하는 내내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뉴욕만 보고 오기엔 뭔가 아쉽지 않아? 기왕 간 거 자동차여행을 해보는 건 어때?
나야 좋지! 어디로든 마음대로 계획을 세워봐.
욕심이 고개를 든 순간 일은 커졌다. 뉴욕만 가기로 했던 일정에서 조금 더 여행반경을 넓히기로 했다.
그렇게 두 여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전혀 다른 제3의 도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 그 처음은...
승무원이 다니면서 종이를 나눠준다. 입국카드인 줄 알았는데 기내식 메뉴가 적힌 종이였다.
체크인할 때 대한항공과 코드셰어가 된다고 해서 뜻하지 않게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뿌듯해하고 있던 차에 비즈니스 좌석에서나 받아볼 법한 대접까지 받으니 혼자 하는 비행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타야 할 다음 비행기는 또다시 연착된다는 것을...
디트로이트 공항의 한 게이트 앞에 앉아 있다. 값비싼 국적기 대신 합리적인 금액의 외항사를 선택한 대가로 또다시 경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발 시간이 지연되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9시 30분이었는데 자정이 넘어서 도착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선견지명이 있던 것일까?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공항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그 시간에도 운행을 할지는 미지수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셔틀버스가 없으면 걸어서라도 가야지 뭐. 별 수 있나?'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예상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마지막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J는 먼저 호텔에 도착해 있다. 일단 가기만 하면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뉴욕의 밤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은 바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모습이 아닐까?
'진짜로 와버렸네, 뉴욕.'
뉴욕의 상공을 날고 있는 지금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급한 만큼 발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자정을 넘긴 지금 셔틀버스를 무조건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공부한 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에어트레인을 탔다. P4에서 내려서 셔틀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주위에 동행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래도 한두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어둠 속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에 의지한 채 서있는데 저 멀리서 두 개의 불빛이 다가왔다.
살았다!
"죄송하지만 일행의 확인이 없으면 룸키를 줄 수 없어요."
"네?"
예약한 바우처를 내밀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까다롭게 굴었다. 두 명이서 한 방을 예약했고 바우처도 각각 가지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J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아직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모르지 않나. 게다가 새벽시간이라 J는 이미 잠이 들었을 수도 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대로 체크인을 못하게 되면 나는 로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단 말인가... 난감한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