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만난 가을

New York

by JULIE K

"쉑쉑버거는 꼭 먹어줘야 해."


"그게 그렇게 맛있대?"


"응! 여긴 유기농으로 만든 프리미엄 수제버거래. 재료가 신선해서 건강한 햄버거라나? 뉴욕까지 왔는데 안 가볼 수 없지! 특이하게 다들 소다대신 밀크셰이크 같이 먹는대."


두 여자는 이른 아침부터 투명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가르며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빼곡히 들어선 고층 빌딩들이 밝게 빛난다. 가로수의 푸른 잎이 도시의 삭막함을 중화시키고 있다.


하루를 바쁘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빠른 걸음은 이 거리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들은 미쳐 보지 못했을 6월의 뉴욕을 우리는 마음껏 감상하고 있다.


거리에 간이의자를 두고 주인이 한 남자의 구두를 닦아주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심지어 길가에 놓인 쓰레기통마저도 예쁘다며 사진에 담았다.


우연히 마주친 뉴욕주립대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각자의 사무실로 출근하느라 급하게 걷는 사람들 틈에 섞여 관광하느라 정신없던 우린 드디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쉑쉑버거(SHAKE SHACK)'매장에 도착했다.


역시 핫플레이스답게 일찌감치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가게 앞은 북적거렸다. 직원이 메뉴판부터 나눠준 덕분에 기다리는 동안 뉴를 고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 본 햄버거는 환상의 맛이었다.


육즙이 가득하고 풍미가 좋은 패티와 신선한 야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번에서는 소한 버터향이 올라오고, 과하지 않게 들어간 소스덕에 단정하게 먹을 수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포슬포슬한 감자튀김과도 잘 어울리며 함께 곁들인 진한 밀크셰이크와 묘하게 화를 이뤘다.


새로운 맛에 성공한 우린, 이건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더 먹고 싶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에 매장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쉬움이 크게 남았었다.



다 같이 돌자
뉴욕 한 바퀴


다시 길을 나섰다.


화려한 전광판이 건물마다 알알이 박혀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뉴욕의 심장, '타임스퀘어(Times Square)'에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려 한다.


관광버스로 뉴욕 거리를 구경하며 특정 명소에서만 잠시 내려서 후다닥 사진 찍기 바빴던 지난 출장과 달리 직접 두 발로 활보하며 걸어 다니는 지금 나는 무척 신이 나있다.


한층 부드러워진 햇살은 여전히 우리의 길을 밝혀주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날려주고 있다.


거리에선 친숙한 캐릭터의 탈을 쓴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고, 때마침 유령들을 잔뜩 태운 보라색 버스가 지나가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타임스퀘어 중심에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세계의 교차로라는 명성에 걸맞게 개성 넘치는 사람들로 거리는 한적할 틈이 없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소녀, 엄마 아빠 손잡고 깃털럼 가벼운 발걸음을 종종거리는 꼬마친구, 자유의 여신상을 코스프레하는 사람 등 마주친 사람들만 바라보아도 즐거웠다.


빌딩보다 광고판이 먼저 들어오는 신기한 이 거리는 마치 뮤지컬 한 편을 본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타임스퀘어의 에너지는 마치 도시의 심장처럼 요동쳤고, 내 심장도 그 리듬에 맞춰 두근거렸다.



붉은색 건물 사이로 푸른빛의 차갑고 도도한 '맨해튼 브리지'가 눈앞에 있다. 철재로 만들어진 브리지의 정중앙에는 조금 전 지나왔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영롱하게 담겨있다.


여기서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데 막상 사진 찍으려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사람들은 다니는 길인 것처럼 비로운 풍경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훗날 SNS에서 욕의 포토스팟으로 떠오를 그 유명한 '덤보(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앞으로 달려갔다가 빼꼼히 뒤에 숨은 브루클린 브리지도 인증하며, 관광객의 신분을 숨길 수 없던 우린 잔망스럽게 덤보를 즐긴 뒤 다시 맨해튼으로 넘어가기 위해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로 향했다.


6월의 오후는 완연한 가을날이다.


남부럽지 않은 눈부신 햇살이 도시를 비추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서늘하게 기온을 낮춘다. 뉴욕에서 만난 초여름은 가을과 제법 닮아있다.


걷기에 최적인 날씨 덕분에 약 1800m에 달하는 다리를 너는 발걸음이 가볍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 한가운데를 벗어나니 모든 것이 느리게 다가왔다.


곳곳에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이 밝게 웃고 있다. 그들의 걸음은 더 이상 빠르지 않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역시 경치를 즐기며 천천히 달린다.


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모델의 포즈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가 눈에 들어온다. 한 번씩 눈길을 주지만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옆을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나의 시간은 잠시 숨을 고른다.


영화 '뉴욕의 가을' 포스터처럼 단풍잎이 온 세상을 빨갛게 노랗게 물들인 뉴욕이 보고 싶었던 나는, 맨해튼과 브루클린 사이를 지나는 이스트 강 위에서 나만의 가을을 만났다.



시원한 강바람을 가르며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로 향하는 페리 위에 있다. 우리가 배를 탄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무료탑승이라 신이 난 우린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예전에 티켓을 끊고 리를 탔을 땐 조금 더 가까이 지나가며 자세히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카메라로 줌인을 해도 또렷하게 잡히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다.


그래도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저곳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우린 탁 트인 풍경과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무 데서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선상 브레이크타임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재충전의 시간이 끝나고 이번엔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로 향했다. 늦은 오후의 거리는 싱싱한 야채와 과일, 손수 만든 소품들까지 가득한 작은 마켓이 열렸다. 편안한 차림으로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에 휩싸인 우리는 거리의 상점들을 둘러보며 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타임스퀘어에서 출발해서 브루클린을 지나 스태튼 아일랜드를 찍고 유니언 스퀘어까지... 뉴욕 한 바퀴를 휩쓸고 다닌 오늘은 길고도 값진 시간이었다.


한식이 그리웠던 J와 뜨끈한 순두부찌개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밤이 그렇게 익숙한 온기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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