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흘러 온 시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y JULIE K

흐린 날에 어울리는 관광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박물관'을 택할 것이다. 하늘에서 금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미가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동선 안에서 일정을 수정한다.


뽀송뽀송한 실내에서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언제나 즐거움과 설렘을 안겨준다. 갑자기 비가 내려도, 천둥번개가 쳐도 이 안에 있는 동안은 몸도 마음도 포근하다.


하늘이 어둑어둑한 지금, 박물관으로 향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수많은 전시관 중 이번엔 뉴욕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가기로 했다.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웅장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기에 입장 전부터 마음이 들떴다.


우선 매표를 하기 위해 사람들 틈에 섞여 줄을 서고 입장료를 확인했다.


성인 $25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자연사박물관 등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박물관은 항상 즐거운 놀이터였다. 무료입장이라서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로 즐기던 것에 막상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도네이션 한다고 말하고 $1 이상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입장할 수 있어요."


"우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걸까?


우리 바로 앞에 줄을 서계시던 한국분이 살짝 귀띔해 주셨다. 뜻하지 않게 귀한 정보를 얻게 된 우린 덕분에 단돈 $2로 입장할 수 있었다.


기재된 입장료와 기부입장에 관한 정보는 여행 당시의 기준이며, 현재 성인 입장료는 $30인 것으로 확인된다.

기부입장은 사라져서 미국 거주인과 뉴욕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만 해당되고, 일반 여행자는 현장에서 매표하거나 사전에 여행사이트 등에서 예매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조각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천천히 이동하며 하나하나 구경하기 시작했다.


주요 전시관만 쏙쏙 골라서 둘러보자 한 것이 어느새 작품들에 매료어 발길을 재촉할 수 없었다.


'나 여기 있는데... 이 먼 곳까지 와서 안 보고 갈 거야?'


유물들이 속삭인다. 투명한 창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신비로운 자태를 마음껏 뽐낸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유물들과 미술작품들은 그 시대 속에서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으론 기나긴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에도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시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복원해 온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과거에서 흘러온 시간들은 머나먼 미래로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그 한 점을 찍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버리면 또 다른 역사가 된다.


그렇기에 작품마다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은 고귀하고 신성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볼 때마다 신비로운 박물관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장소다. 늘만큼은 시간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작품들에 흠뻑 취해본다.


그리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프리카, 이집트 등 다양한 테마의 전시관을 넘나들 때마다 바뀌는 분위기가 한자리에서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공간을 빼곡히 둘러싼 유물들 속을 빠져나와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 넓고 탁 트인 공간은 우리를 또 다른 시공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중앙에 우직하게 서있는 커다란 신전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박물관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수로가 신전을 감싸고 있었다.


이곳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마치 내가 이집트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일까? 바로 옆에 난 커다란 통창을 통해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마저 지금의 것이 아닌 듯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몰될 위기에 처할 뻔 한 유적들을 옮기는데 도움을 준 미국에 보답의 의미로 엄청난 양의 유물들과 '덴두르 신전(The Temple of Dendur)'을 기증했다는 이집트 정부.


그 결과 우린 이렇게 가까이서 쉽고 편하게 이집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치유의 여신이자 위대한 어머니, 이집트 최고의 여신 이시스를 기르기 위해지었다는 덴두르 신전은 바로 앞에 흐르는 강물과 지형, 덥고 건조한 기후까지 고스란히 재현된 공간 속에 안착해 있다.


벽에 새긴 정교한 조각들까지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볼 수 있다니,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렇게 커다란 신전을 어떻게 옮겨온 걸까. 하나라도 놓칠세라 구석구석 관찰하는 내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혼자였으면 빠르게 지나치며 둘러보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둘이기에 감동도 놀라움도 몇 곱절이 되었다.


오랜 시간을 단시간에 달려온 우린 피곤에 지쳐 흐르는 강물을 벗 삼아 이곳에 머무르며 한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호도독, 호도독.

어느새 유리창에 내려앉은 빗방울이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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