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트립의 매력

자유롭게 어디로든

by JULIE K

벌써 몇 마리의 돌고래가 지나갔는지 수도 없다. 미국 남부의 끝, '키웨스트(Key West)'로 향하는 길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영화 세트장처럼 띄엄띄엄 서 있는 집들 앞에는 체통을 품은 동물 석상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지나칠 때마다 귀엽다는 생각에 시선 빼앗긴다.


마치 '우리 집에 놀러 와~!'라고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만 같았다.


이번엔 잡은 물고기를 말리듯, 보트들을 줄지어 널어둔 경이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받은 색색의 보트가 더 또렷하게 반짝다.


그저 목적지로 가기 위해 스쳐 지나는 길일뿐인데 간간히 마주치는 뜻밖의 풍경들이 행을 새롭게 채워 준다.



핸들을 꺾는 순간,
만나는 세상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바다정신을 빼앗긴 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오버시즈 하이웨이(Overseas Highway)'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학창 시절의 나는 세계지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선생님은 세계 곳곳의 지리와 환경을 마치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그 수업을 듣다 보면 짧은 시간 안에 세계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한 번도 졸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최남단에 있는 키웨스트 섬으로 가려면 수십 개의 섬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들을 잇는 42개의 다리 지나야 한다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길은 원래 철도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잇따른 허리케인이 그 흔적을 무너뜨리자 결국 시대의 변화에 맞춰 튼튼한 도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럼 바다 위에 도로가 있다는 거야?'


상상만 해도 신기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언젠가 꼭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


그리고 지금 나는, 길 위에 있다.


마을을 벗어나자, 쭉 뻗은 도로의 양옆으로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정면에 초록빛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개의 섬들 중 하나인 것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순간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자, 마음 한 편이 시원하게 뻥 뚫리고 짜릿한 기분이 밀려왔다.


바다와 섬이 번갈아 나타나는 풍경이 신기했지만 '이렇게 달려도 말 안전까?' 하는 작은 걱정도 뒤따랐다.


물 위를 달릴 때는 괜히 긴장을 했다가 육지에 닿으면 또 안심이 됐다. 감정이 왔다 갔다 하며 파도처럼 들썩였다.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는 '키 라르고(Key Largo) 섬'을 지나는데 '캐리비안 클럽'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왠지 저곳에 가면 '캐리비안의 해적' 스패로우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한번 들어가 볼까?"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순간, 우리의 판단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다.


차에서 내리 커다란 야자수 노란색 자동차가 눈앞을 환하게 밝혔다. 마치 우연히 펼쳐진 한 장의 그림 같았다. 놓치기 아쉬워 그대로 사진으로 남겼다.


이곳은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J와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나른한 토요일 아침을 평화롭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시원한 물살을 가르며 보트를 타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유로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현실과 거리가 먼 영화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판만 보고 들어 온 '캐리비안 클럽'은 실제 영화 촬영지였던 펍이었다.


정취에 푹 빠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Highway South 1'이라는 간판이 계속 신경 쓰인다.


잠깐만 쉬어도 도착이 늦어질 텐데 눈치 없는 이정표는 5분마다 나타나서 '이래도 안 쉴 거야?'하고 장난치듯 손짓하는 것 같다.


'1번 국도'는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 서부여행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해안을 따라 달렸던 도로가 바로 '캘리포니아 1번'이었기 때문이다.


지리적 위치는 다르지만 같은 1번 국도를 달리다 보니 그때의 추억이 슬쩍 따라붙는다. 러니 이정표가 괜히 더 반갑게 보일 수밖에!


길 한쪽에 주차장이 보이길래 우리는 또다시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자 새콤한 바다향이 먼저 다가왔다. 진한 청록빛 바다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시원한 바람이 그 위를 지나간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까지 생생하다. 이곳을 그냥 지나쳤다면 우리도 조금 전 바람처럼 사라져 간 자동차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잠시라도 쉬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J와 나는 드라이브를 계속하며 키웨스트로 향하는 여정을 느긋하게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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