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트립의 현실

길 위에서 마주친 뜻밖의 순간들

by JULIE K

쭉 뻗은 도로를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지루한 길을 달릴 즈음 J가 말했다.


"이 근처에 화장실이 있을까?"


"글쎄... 휴게소가 나올 분위기는 아닌 거 같은데..."


그때 마침 로 옆으로 출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일단 여기로 빠져볼까?"


우리나라처럼 휴게소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곳에서는 휴게소가 눈에 띄면 일단 쉬어가는 편이 좋다. 하지만 갑자기 오는 신호까지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빠져나가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것 같아 급한 마음으로 핸들을 꺾었다. 문제는... 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 갑자기 내려버린 우리는 차를 천천히 몰며 화장실이 있을 만한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다를 끼고 정갈하게 늘어선 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 사이 난 수로에는 요트들이 조용히 정박해 있었다.


우와...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잠시 잊을 만큼 럭셔리한 분위기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긴 도대체 어떤 동네일까. 알 수 없는 마을에 묘하게 빠져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드문드문 서 있는 거대한 주택들 뿐, 간판이 걸린 식당은 아무리 둘러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시야에 가느다란 십자가가 어왔다. 반 주택처럼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었지만 한쪽 끝에 박힌 그 구조물은 분명 교회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 하나님은 이웃을 내치지 않지.'


"저기 교회가 보이는데, 일단 가보자!"


나도 모르게 용기가 나서 무작정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부자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아담한 교회는 오히려 더 소박해 보였다.


초록색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죄송하지만 혹시 화장실을 쓸 수 있을까요?"


마침 교회 안에는 여자 두 명이 있었고, 우리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겨우 말을 꺼냈다.


"물론이죠.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잠시 뒤, 다시 마주한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금 여행 중이신가요?"


"네. 지나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잠깐 들렀어요. 동네가 정말 예쁘네요."


"오, 그렇군요. 이 동네 참 예쁘죠? 살기 좋은 곳이기도 해요.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여기서 작은 행사가 열릴 거예요. 주민분들도 많이 오셔서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요. 괜찮다면 두 분도 함께 오셨으면 해요."


J와 는 서로 바라봤다.


낯선 곳에서 뜻밖의 의는 분명 반운 일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착지까지 가야 하는 길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행사가 저녁에 시작된다니, 시간을 너무 지체할 수 없었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희가 지금 포트 로더데일로 가는 중이라 함께하 못할 것 같아요."


많이 아쉬웠지만 여자와 짧은 작별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는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작은 마을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어딜 가나 커다란 간판에 교회이름이 적혀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 교회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커다란 십자가만이 걸려 있을 뿐었다.



일단 뛰어!


자동차 여행을 하다 보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주유소다.


지금이야 국내에도 셀프 주유소가 하지만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당시만 해도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이 있었다. 운전자가 직접 주유를 들고 기름을 넣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호주 여행을 하던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미리 주유할 금액을 계산하고 나와 직접 주유기를 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먼저 주유를 하고 나중에 계산하는 곳도 있어 그 과정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정보를 찾아봤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을 때 느꼈던 떨림과 신기함에 함께 여행하던 일행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남기기도 했었다.


내게 주유소는 렇게 작지만 특별한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캄캄한 어둠 속을 달리던 중 연료 게이지가 점점 내려가는 것이 눈에 밟혀 가까운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를 하는 동안 J는 차에서 기다렸고, 나는 홀로 번호를 확인한 뒤 편의점에 가서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실례합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보니, 헝클어진 긴 머리에 치렁치렁한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한 여자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돈 좀 빌려줘요."


눈이 마주친 순간, 초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방금 계산해 지갑을 손에 들고 있던 터라 들킬까 봐 지갑을 꽉 움켜쥐고 등 뒤로 숨겼다.


"저... 저는 돈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러자 여자가 손을 뻗으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지 말고, 가진 것 좀 줘봐요."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데, 반대편에서 건장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 여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향하는 방향이 우리 쪽인 것만은 분명했다.


.


혹시 이들이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다. 장은 미친 듯이 뛰고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주변은 어둠뿐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본능만이 움직였다.


차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리기 시작했다. 평소 달리기를 가장 싫어했지만 그때만큼은 초인적인 힘이 솟아올랐다.


"문 잠가!!"


헉헉대며 차에 올라타자마자 J에게 소리쳤, 영문을 모르는 J는 허둥지둥하면서도 재빠르게 문을 잠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시동을 걸어 주유소를 벗어났다.


손이 달달 떨고 심장은 한참 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조금 전 일을 J에게 설명하, 그제야 J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여자는 정말로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반대편의 남자 역시 아무 상관없는, 그저 자의 차로 아가던 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만큼은 내게 분명 공포였다.


외국에서 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기에 여행 중엔 항상 경계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겉모습만 보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날 밤의 경험은 지금도 내게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를 또렷하게 남겨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이 참 신기하다.


비현실적으로 새파란 하늘 위에는 누군가 일러스트로 그려 놓은 듯 고화질의 구름이 입체적으로 걸려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 울 수 있을까.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맑은 지역을 지나자, 이번엔 강렬한 햇살을 온몸으로 머금은 구름이 나타났다. 하늘에 넓게 퍼져 마치 햇빛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빛을 흡수한 색감이 신비롭다.


다음 지역으로 들어서자 시커먼 먹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한적한 도로 위에는 가끔 한 두대의 차가 우리를 지나칠 뿐,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고 평온하다.


바로 그때, 정면에서 번개가 번쩍하며 하늘에 실금을 그었다. 뒤이어 두세 번 더 연속으로 번쩍이더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번개는 하늘을 가르듯 떨어졌다.


"어? 방금 저기 번개 친 거 아냐?"


J와 나는 갑작스레 시작된 번개 쇼에 놀란 토끼눈이 되어 앞을 응시했다. 얼마나 떨어진 거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향하는 쪽에 번개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하늘 위는 온통 수묵화처럼 까맣게 물들었지만, 그 틈을 뚫고 햇빛이 내려와 도로 위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운전만 하고 있어도, 다채롭게 변하는 하늘 덕분에 저절로 여행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로드트립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상황을 겪게 되고, 때로는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늘 위 캔버스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우리를 유혹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대자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여행을 계속하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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