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진심
누구나 진심인 무언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패션일 수도, 뷰티나 음식, 운동이나 음악, 여행일 수도 있다. 아주 가끔은 공부일 수도 있고.
어느 날 꼬마가 종이를 펼쳐 들고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낯설 정도로 집중돼 보였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을까. 설마 공부?
늘 관심 밖이던 공부를 갑자기 하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괜히 기대가 생겨 흐뭇한 마음으로 물었다.
"우리 딸,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공부하는 거야?"
"응... 급식표."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녀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위와 테이프를 들고 와 노트 앞장에 급식표를 오려 붙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좀 저렇게 열성적으로 해보지...'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웃음을 삼켰다.
나는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는 편이라 급식표를 들고 다니던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의 메뉴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모습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그것도 내 딸을 통해서.
매년 연말이면 큰아이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린다. 아이들이 1년 동안 배운 악기를 연주하는 작은 발표회다.
바로 작년,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연주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딸아이도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 뒤면 크리스마스 콘서트야. 오빠 졸업하면 못 보니까 이번엔 같이 갈래?"
"좋아! 나도 갈래!"
클래식기타를 연주하는 오빠가 보고 싶다며 흔쾌히 따라가겠다고 했던 아이는, 잠시 뒤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가 금세 다시 돌아왔다. 얼굴은 아까와 달리 제법 심각했다.
"아! 안돼. 나 못 가."
"왜? 체험학습 내면 되잖아."
"그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돼지불고기가 나온대. 거기다 순두부찌개도 나온단 말이야. 급식을 포기할 순 없어."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남편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 빠지는 걸 제일 좋아할 나이에 급식 때문에 꼭 등교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콘서트보다 돼지불고기, 기타 연주보다 순두부찌개.
그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시간이 흘러 연주회 날이 다가왔다. 일을 뺄 수 없어 올해는 남편만 참석했고, 아들은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연주 영상은 가족 단톡방에 곧장 올라왔다.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은 영상으로 대신하며 마음을 달랬다.
미안한 마음에 아들이 먹고 싶다던 피자와 족발을 사 들고 집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 밥 먹다 말고 딸에게 물었다.
"영상 보니까 어때? 그래도 같이 갈걸 후회하지 않았어?"
"아니! 전혀~! 왜냐면... 오늘 급식이 정말 맛있었거든!"
이걸 못 먹었으면 오히려 후회했을 거라며, 오늘 미술시간에 한 스킬자수가 얼마나 재밌었는지까지 신이 나서 늘어놓는다.
심지어 녀석은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 나 스킬자수 사줘!"라고 외쳤다.
그제야 알겠다. 이 꼬마에게 급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하루를 기대하는 설렘이라는 걸.
"아싸~오늘 제육볶음 나온다~ 김치에다가 밥에다가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히히!"
녀석은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그렇게 신이 나서 학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