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성장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흘러간 한 해였다.
희미하게 지나간 봄과 가을, 그리고 짧지만 선명했던 여름이 모두 물러나고, 어느새 그해의 마지막 축제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다.
정신없이 살아낸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큰 변화를 맞이한 아이가 있다.
"엄마~~~!! 이것 좀 봐. 나 바지가 다 이렇게 됐어."
딸아이가 촐랑대며 안방으로 들어와, 입고 있는 바지를 가리켰다. 맙소사! 작년에 산 바지가 어느새 7부가 되어 있었다.
"다른 바지는? 없어?"
"다른 것도 다 이래~!"
키가 눈에 띄게 자란 것이 마냥 기쁜지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항상 빼빼 마른 녀석은 매년 키가 크고는 있었지만 살은 좀처럼 붙지 않아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평균적으로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분명 키도 해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었지만, 늘 곁에 있던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어느 순간 한눈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작아져서 더는 입지 못하게 된 옷들을 정리하고 주말에 부랴부랴 아이와 쇼핑을 나섰다. 갑자기 옷이 많아졌다며 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겨울이라 필요한 옷가지가 많아진 데다, 잠옷까지 작아졌다며 아이는 마지막 한 벌까지 놓치지 않고 챙겼다.
늘어나는 쇼핑백만큼 행복을 감추지 못한 채 싱글벙글 웃는 딸과 달리 점점 쌓여가는 영수증을 보며 나는 한숨만 늘어갔다.
사실 나의 작은 소원은 큰아들이 중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교복이 작아져 한 번쯤은 새로 맞추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미처 이루기도 전에 딸아이의 옷부터 다시 사게 될 줄은 몰랐다.
큰 아이를 등교시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늘 딸과 눈이 마주친다.
차려 놓은 아침을 먹다 말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뭉클하다.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 들어서면 아이는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개방정을 떤다.
그런데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꼬마의 얼굴 높이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아, 이제 꼬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딸아이를 데리고 거울 앞에 섰다. 나란히 섰는데 녀석의 키가 어느새 내 이마까지 훌쩍 올라와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엄마 키를 따라잡아 간다는 사실에 녀석은 신이 났다.
무릎을 살짝 굽혀 보았다. 아아. 언젠가는 나보다 키가 커질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아직, 이 아이의 성장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하하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리 집에서 엄마가 제일 작겠네!"
내 속을 알 리 없는 꼬마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이 내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막상 그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느끼니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그늘이 필요하지 않을 아이들의 앞날을 응원하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묘하게 씁쓸한 찬기가 남았다.
고작 키 하나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데, 앞으로 맞이하게 될 수많은 순간들 앞에서는 나는 또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시간은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