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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an 09. 2024

게임 중독

그들만의 승부 세계

시끄러운 식당에서 저마다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은 테이블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 떨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즐겁다.


그런 내 옆에는 이제 갓 두 돌이 지난 아들이 함께 있다.


통통한 아기는 주는 음식을 잘 받아먹고 긋이 웃어준다. 보통 식당에 아이와 함께 가면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그 무엇이 됐든 정신없이 흡입하기 바쁜데, 나는 하나하나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평화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머~ 애가 어쩜 이렇게 얌전해? 밥도 잘 먹고.. 대체 비결이 뭐야?"


낯선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은 한두 번씩 이렇게 물어본다.


"그냥.. 내가 요 녀석을 잘 만난 덕분이지 뭐.."


그럴 때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1990년대,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어느 날 우리 집에 신문물인 게임기가 등장했다.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선물로 받아 오신 것이다.


처음으로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재밌는 게임팩들이 하나 둘 늘어갔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MS-DOS세대였던 나는 자연스 그 시절 유행하던 컴퓨터게임도 접하게 되었다. 새로 나온 게임은 플로피디스켓으로 열심히 수집했던 기억이 난다.

나만의 알고리즘은 수동으로 정성껏 쌓여 갔다.

더 이상 놀이터에 나가서 뛰어놀 나이가 아니었기에 집에 있을 때면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번 빠져버린 게임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집에는 늘 TV가 켜져 있었다. 부모님께서 아침이면 뉴스시청하신다. 


요즘처럼 한번 지나간 TV프로그램을 언제든 원할 때 찾아볼 수 없었다. 보고 싶은 것은 꼭 제시간에 틀어서 봐야 했던 시절이었다.


드라마 '가을동화'가 한창 인기 있을 때, 미처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근처에 TV가 틀어져 있는 가게나 지하철역을 급하게 찾았다.


나 역시 공부하다 말고 뛰쳐나가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가게에 있는 TV를 봤다. 슬픈 장면이 나올 때면 모두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함께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식사시간에도 TV를 보며 밥을 먹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 간에 대화가 줄어들었다. 한번 단절된 대화는 다시 돌이키는데 수년이 걸렸다.



현재 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다. 아이들 컴퓨터와 핸드폰에 게임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태어나부터 주어진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첫 번째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시기의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지나오면서 알게 되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도 동영상을 틀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 자기 울기 시작하면 남편이랑 번갈아가면서 우는 아기를 데리고 식당 밖으로 나가서 달래주었다.


울음을 그치하는 데 성공하면 남은 음식을 끝까지 먹을 수 있었지만 간혹 그렇지 못할 때면 음식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나와야 했다. 불복이다.


항상 가방에는 장난감이나 색칠도구들이 들어있었다. 다림이 지루한 녀석들을 달래 줄 것들이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한시도 눈을  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눈 맞춤이 늘어났다.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대화가  시작했불편해하거나 우는 이유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찰나의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 평화가 찾아온다.


녀석들이 좋아하는 동영상을 틀어주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조금 많이 힘들라도 우리만의 규칙을 지켜내며 독하디 독하게 키웠다.

기내 필수 아이템


사람들은 이런 우리가 신기하다고 늘 입모아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 아이들이 유난히 조용것은 아니다. 나이에 맞게 엄청 발랄하고 까불까불 거리며 부산스럽기까지 했다.


요즘시대에 애들을 너무 가두고 키우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은 걱정과는 달리 유행에 앞서있다.


학교라는 단체에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나!


사교성 좋은 은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고 있다. 최신노래, 영화, 춤, 시사상식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


가끔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말이 너무나도 잘 통할 때가 있다. 이런 건 어디서 알았을까..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미디어와 게임에 노출시켜 주지 않더라도 녀석은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모든 아이들이 게임을 하기에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설치해 다고 한다.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거나 집을 짓는 등 단순한 게임도 있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잔인한 게임을 하거나 욕을 배는 등 걱정이 늘어난다.


무엇이 됐든 시작하면 끊어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게임을 설치해 달라고 힘들게 했다면, 아마 우리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큰아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 잠시 컴퓨터에 게임을 설치한 적이 있다.


국민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닌 오랜만에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 남편과 나를 위해서였다. 자동차가 원하게 질주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처음 접하는 상황에 아들은 공부하듯 열심히 배우며 게임을 했다. 그 당시 우리의 규칙은 간단했다. 그날 주어진 공부와 숙제를 마치면 1시간 동안 자유로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만 반짝 유행했던 게임은 아이들이 크고 바빠지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후에도 찾지 않았고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자란 녀석들이 어려서부터 중독된 게임이 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연령에 맞게 바꿔가며 함께 놀이 삼아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성취감을 느끼해 주려고 가끔씩 봐주곤 했었는데 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빠질 수 없는 여행 준비물


철저한 승부세계가 열린 것이다.


우리끼리 긴장하며 엎치락뒤치락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사뭇 진지하다.


하루를 일찍 마감하는 날이면 아이들과 브루마블을 즐겨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를 소유하면서 건물도 짓고, 황금열쇠를 열어 미션을 수행한다.


한 번은 내가 장기자랑을 했는데 아들이 30만 원이나 쾌척해 준 적이 있다.


승부는 냉정하게 하지만 또 자비를 베풀 때는 통이 크다. 도시를 사고 빼앗기고 우주여행도 하 손에 땀을 쥐는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이 게임은 게도 내가 서울을 사면 남편이 항상 서울에 걸려서 파산을 하고, 지막엔 나의 우승으로 마무리가 된다.


얼마 전 게임에서 아들이 관광여행으로 서울에 간 적이 있다. 비싸다고 관광만 하고 땅을 사지 않았고, 바로 다음 순서에서 내가 서울에 걸려 땅을 샀다.


그다음 순서인 둘째 아이가 황금열쇠를 뽑아서 뒤로 세 칸 옮기며 서울에 걸려버렸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400만 원을 놓친 아들 녀석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기막힌 타이밍에 다들 어이없어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안타깝지만 반액대매출로 서울을 떠나보내야 했던 나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서울땅을 손에 넣었고, 그 뒤로 우연찮게 아들서울에 두 번이나 걸려서 파산을 맞이했다.


단순하지만 우리끼리 게임을 하면서 만드는 스토리가 제법 흥미진진하다.

서울, 서울, 서울!!


늘 그렇듯 우승은 나의 것이다.


아들은 엄마를 꼭 한번 이겨보겠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기에 절대 봐주는 법이 없다.


한바탕 즐겁게 놀고 나면 아이들의 표정엔 생기가 돈다.



여행 갈 때도 빼먹지 않고 챙기는 것이 보드게임이다.

많은 보드게임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게임은 바로 루미큐브다.


클래식은 영원하리라~!


루미큐브는 아이들이 수와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었다. 역시나 봐주지 않던 나는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녀석들의 두뇌회전이 빨라지면서 순위가 꽤 많이 변동되었다.


점점 치고 올라오 녀석들의 실력에 긴장감이 더 높아졌다. 모래시계는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효자 아이템이다.


여행 갈 때마다 놓을 수 없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치열했던 흔적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보드게임을 입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카탄'이다.


규칙이 복잡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그동안 몇 번이고 망설였데, 이젠 녀석들이 큰 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새로운 게임에 진심이었다. 하나하나 판을 뜯어내며 정성스레 준비를 했고, 모두가 둘러앉아 낯선 규칙을 익혔다.

설명서 예시대로 세팅해야 한다는 아들


백번 눈으로 보는 것보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


드디어 첫 게임을 시작한 우리는 점점 카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마을을 짓고 도로를 뻗어나가며 영역을 확장시키고 필요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상대방과 거래를 한다.


거래가 성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도둑을 옮길 때면 최대한 눈을 피하며 긴장했다.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어차피 우승은 나의 것이다. 이기려고 기를 쓰고 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승리의 여신은 늘 나의 편이다.


녀석은 역시 보드게임으로 엄마를 이길 수는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다음에는 꼭 1등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중독!


우리의 게임중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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