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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an 04. 2024

카페에서 공부하는 아이

학원을 꼭 가야 하나요?

난아기가 자라서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조금 더 입체적인 갈등 시작된다. 위험한 것들을 만지고 아무거나 입에 넣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안돼'라는 언어부터 습득하게 된다. 


나는 그 말을 '괜찮아'라바꿔주고 싶었다.


아이의 손이 닿는 가장 낮은 서랍장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고, 그 자리에 좋아하는 장난감과 책을 잔뜩 넣어주었다. 아들은 맘껏 서랍을 열고 장난감을 꺼내서 논다. 한참을 어지르며 놀고 난 뒤 자리정리하는 것 역시 놀이의 연장선이다.


육아를 하면서 우선시 여겨왔던 것은 바로 아이의 행복과 자존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게 뛰어놀 감을 깨워주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부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이들이 꼭 대학을 가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다. 대학에 가야 하는 뚜렷한 이유와 목표가 있다면 지원해 줄 생각이지만 고자 하는 길이 전혀 상관없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타고난 능력도 다르듯 부도 그 카테고리에 있는 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학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일이 없었다.


주위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아이만 바라봤다. 녀석의 눈높이에 맞춰서 생각했고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한 뒤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 주었다.



놀랍게도 아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는 능력을 보여줬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한글을 깨치는 데 성공 것이 그 시작이다.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를 아장아장 걷던 꼬마는 눈에 보이는 간판을 스스로 읽었다. 가장 큰 공을 세워주신 분은 바로 날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신 할머니였다.


아들이 하는 유일한 취미 중 하나는 독서였다. 책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었고, 활동지를 통해 학습을 했다. 책에서만 보던 것들을 조금 더 생생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된 각종 전시회, 박물관, 과학관 등을 찾아다녔다.

취미는 그림그리기


녀석이 자라는 시기에 맞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정보들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엄마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부터 문제집을 접하게 됐다.


자기주도 학습이 시작된 것이다.


녀석은 하루 한두 쪽씩 매일매일 꾸준히 문제집을 풀어왔다. 정답률이 높으니 채점해 주는 재미도 있었다. 대로 푸는 족족 동그라미가 생기니 아이도 신이 나서 문제를 풀었다.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니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받고 싶어졌다.


각종 경시대회 정보가 눈에 띌 때면 아들과 상의해서 함께 지원했다. 운 좋게도 녀석은 바둑, 한자, 수학, 영어, 영재원 등 참여한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장과 메달을 받아왔다.


그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참여했을 뿐인데,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모든 것을 해내는 녀석이 신기.



나 역시 한낯 인간이기에 녀석의 타고난 능력에 눈이 멀어 점점 욕심던 적이 있다. 


내가 다른 엄마들에 비해 너무 해주는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 유명하다는 학원가에서 방학 동안 수학 특강을 등록해 주었다. 상담은 늘 그렇듯 아이의 점과 단점을 냉철하게 수치화시켜 주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든다.


녀석은 명석하지만 시작이 늦었다고 했다. 금도 늦지 않았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최고등급에 진입하는 것은 문제없을 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상담하 내내 이 수업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찌감치 뭔가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강을 듣는 동안 녀석은 음 보는 문제들에 호기심을 가졌다. 과제도 풀릴 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서 해결해 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하는 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녀석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처음부터 학원에서 가르치는 대로 학습이 되지 않은 녀석은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 선생님의 풀이 과정을 듣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다. 선생님 녀석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고 했다. 그것이 칭찬인지 아닌지 알쏠달쏭했다.


특강이 끝나갈 때쯤 수업에 재미를 붙인 녀석은 속해서 정규수업도 듣고 싶어 했다. 리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성취감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여름날, 4주간의 수업 우리에겐 짧지만 강렬했다.


정규수업을 등록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매달 나갈 학원비는 상당한 부담이다. 게다가 주 3회 내내 먼 길을 달려 올 자신이 다. 두 아이를 케어해야 했기에 녀석에게 온전히 내 시간을 다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 학원이었다. 처음부터 특강만 들어보자 하고 시작했던 것이었고 현실적인 지원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잠시잠깐 녀석이 진짜 영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들만의 세상을 경험해 보니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뱁새는 황새를 쉽게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렇다고 포기는 하지 않았다.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는 없기에..


꼭 학원을 다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늘 하던 대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키우 되는 것이다.


그냥 재미 삼아하던 공부를 조금 더 구체화시켰다. 녀석에게 필요한 학습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함께 시간표를 작성했다. 그날그날 해야 하는 분량 세부적으로 나누었다.


자기주도 학습이 이루어진 녀석은 초등학교 6년 내내 문제집만 풀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남다른 책임감으로 스케줄대로 꼭 문제집을 풀어 아이였는데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좀처럼 책에 손을 대지 않는다. 입학하면서 습관적으로 샀던 교과중심의 문제집들은 책꽂이 한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처박혀있다.


녀석은 학습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부족이라힘겨워했다. 즐겨 듣던 EBS강의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학원에 보내달라고 녀석이 말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학원비 이상의 등록금을 내고 있어서 더 이상은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배워오는 것이 많을 는 기대와 달리 학원에 의지 해야 하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과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문제집을 풀어보라고 독려하는 것뿐이다. 만사가 귀찮은 녀석은 나의 바람과 달리 점점 공부와 멀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별생각 없이 던져 준 과제들을 녀석은 늘 훌륭하게 소화켰지만, 나씩 하나씩 알게 모르게 늘어난 학습량이 되려 아이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겠 생각이 들었.  시작한 것 끝냈으면 좋겠는데 녀석의 관심은 어디를 향하는지 알 길이 없다.


공부는 힘들어도 학교 과제는 해야 한다.


과제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을 함께 해결해 보고자 풀이가 막힌 문제들은 주변들에게 자문도 구해보고 직접 풀어보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에 풀던 것을, 손은 머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기억을 해냈다. 한 페이지를 다 풀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나의 만족올라갔을 뿐이다.

치열했던 흔적들..



목표 학습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매일 같이 과제와 싸우는 녀석에게 문제집으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 채 억지로 하는 것은 실력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학교 공부만이라도 충실하게 해 주기만을 바랬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문제집이 찜찜하게 자리했다.


렇게 녀석은 그동안 열심히 해오던 학습을 멈추고, 정말 선을 다해 본격적으로 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첫 1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신나는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 숙제는 하루에 두세 개 정도 꾸준히 해나간다면 무리 없이 끝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미 노는 재미에 푹 빠진 녀석은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는다. 집에서는 늘 기운 없이 축 쳐져 있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만 쌩쌩하게 살아났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어느새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잔소리에 못 이겨 조금씩 숙제를 하긴 했지만 남은 기간 동안 끝내기엔 어림없는 분량이었다.


"엄마랑 카페 가서 숙제할까?"

너 카페 좋아하네..


참다못해 석에게 말했다. 사람도 많고 시끄러워서 오히려 집중을 못한다며 단에 거절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숙제를 끝내지 못한 채 개학을 맞이할 것이다. 노트북과 읽어야 할 책들을 가방에 쑤셔 넣고 석을 차에 욱여넣은 뒤 무작정 발했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카페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서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에 도착했다. 넓고 좋은 자리도 많은데 녀석은 구석진 자리를 파고들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료와 빵으로 기분 좋게 맞춰주며 슬슬 본론에 들어갔다.


읽어야 할 책을 번갈아 가며 속독했다. 시간이 없기에 주요 부분만 발췌해서 내용을 요약하기로 했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녀석은 이내 집중력을 발휘 주어진 시간 동안 2 독서록 작성을 끝냈다.


누가 카페는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된다고 했던가?!


한 번 성공을 맛본 녀석은 더 이상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씩 아들과 카페에 가서 밀린 문제집을 푼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 때보다 철두철미한 집중력을 발휘다.


녀석에게 학원과 비슷한 곳이 생긴 것이다. 한 달 수강비에 비하면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없어서 자주 가지 못 할 뿐이다.

이제 공부 해야지?



모처럼 아들이 밝은 표정으로 '엄마~'하며 찾아왔다. 변성기가 한차례 지나간 오랜만에 들어보는 하이톤의 목소리였다.


"성적표가 나왔는데 A가 하나밖에 없어요."


음.. 리액션이 고장 났다. 그럼 어디까지 받아 온 것인가.. 성적에 관해서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으니 자연스레 행동하면 된다.


살짝 긴장하며 성적표를 열었는데, 정말로 A가 하나밖에 없었다.


A+, A+, A-, A, B


옴마야~~!!

말없이 한참을 멍하니 뚫어지게 바라봤다.

녀석이 이 성적을 받기까지 죽어라 달려왔을 지난 학기를 생각하니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세상 감동받은 나는 수고했어, 고생 많았어..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녀석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는데 섣불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1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과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코멘트에 감동받아서 녀석을 와락 안아줬는데, 등짝이 딱딱하게 굳어서 어색해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툭하면 달려와서 내 품에 폭 안기던 애교 많던 녀석었는데 변했다. 그래도 잘했다고 꼭 안아 줄 걸 후회가 된다.


다음 기회는 놓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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