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K Jan 01. 2024

보여주고 싶은 세상, 보고 싶은 세상

엄마, 또 어디 가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늘 함께 했다.


어느 집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4명이 우르르 함께 다닌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성격이 다 다른 만큼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심지어 먹는 것도 제각각이니까.. 그래도 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리만의 추억을 열심히 만들었다.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는 주로 둘레길이나 공원같이 드넓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많이 다녔었다.


조금 더 커서 유치원생이 되었을 때는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대부분 박물관이나 전시회등 볼거리가 가득하면서 학습적인 효과도 볼 수 있는 곳으로 다녔다.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 영향으로 우리의 주말은 항상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다.


처음 간 곳에서 색다른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한 것을 보면 힘든 줄도 몰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바람 쐬러 나갈까? 하고 묻자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상하다. 분명 "네~ 좋아요~!" 하며 방방 뛰면서 외출 준비부터 하고 나와서 기다려야 하는데 녀석은 잠잠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녀석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있었다. 그 시작은 어처구니없게도 아들에게 코로나가 찾아왔을 때였다.


난생처음으로 방 안에서 홀로 격리를 하는 녀석이 걱정되어 매 끼니와 간식을 챙겨서 문 앞에 두고 혹여 심심해할까 봐 좋아하는 책과 퍼즐, 레고 등 시간 보내기에 적절한 것들을 잔뜩 사서 방안에 넣어 주었다.


다행히 하루도 안 돼서 열이 떨어졌고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어느 정도 큰 녀석은 일주일이란 시간을 인내하며 잘 버텨 주었다. 열체크도 직접 하고 시간 맞춰서 환기시키고 약도 잘 챙겨 먹었다.


어린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린 집들은 그냥 다 같이 함께 생활한다고 한다. 아직 부모 손길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고맙게도 녀석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많이 컸다. 어린 동생과 허약한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격리생활에 충실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안타깝던지.. 속상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혼자서 무덤덤하게 규칙을 잘 지키며 버텨 낸 아들이 장하고 대견했다. 격리 해제되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속사포같이 쏟아냈다.


잠은 잘 잤니? 아픈 데는 없고? 불편한 건 없었어? 심심하지 않았?


매일 영상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지만 랜만에 보는 녀석이 무척 반가웠다. 수척해져 있을 줄 알았던 얼굴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표정도 한결 밝아져 있었다.


"괜찮았어요."


무심한 한 마디지만 직접 얼굴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움과 안도의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데 격리 생활은 녀석에게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아늑고 편안다고.. 때 되면 음식이 들어오고,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 들을 일도 없고, 동생이 귀찮게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훌쩍 커버린 너의 낯선 뒷모습


녀석에게는 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비록 자의가 아닌 타의였지만 한 번 동굴로 들어간 아들은 쉽게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방안을 굳이 벗어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을 밝은 세상으로 꺼내 주고 싶었다. 점점 축 늘어져가며 연체동물이 되어가는 을 그냥 두고만 볼 순 없다.



날이 좋아서, 하늘이 예뻐서, 흐리면 흐린 대로..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어디든 끌고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아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울긋불긋 튀어나온 여드름은 가 난 듯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또 꽃 보러 가요?"


아아~~!! 이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한다며 다녔던 것이 어쩌면 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청소년을 데리고 갈만한 곳이 딱히 많지 않다. 그 좋아하던 박물관이며 미술관도 이젠 무관심해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가자고 해도 반응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볼 만한 곳을 찾아서 데리고 갔었다. 하지만 꽃과 곤충, 동물들을 관찰하며 자연을 사랑하던 아이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았다. 맨날 똑같은 꽃을 도대체 왜 보러 가냐고 투덜댔다.

너 꽃 좋아하네..


아들에게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재밌는 것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꽃은 왜 보러 가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늘 그 자리에 있고 같은 계절에 똑같이 피어나는데 말이다. 세상에서 꽃사진 찍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 갔다. 

라떼는 메모리 용량이 큰 카메라가 아닌 36방짜리 필름을 넣고 찍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진 한 컷, 한 컷이 소중했다.


어쩌면 녀석도 그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나에게도 핸드폰에 꽃사진이 가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모든 세상이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우리의 일상도 달라졌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대신 광활한 자연을 다시 찾 시작했다. 둘레길을 걷고 인적이 드문 공원을 찾아가서 산책했다. 모든 것에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꽃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송이 한 송이 저마다 갖고 있는 얼굴도 달랐고 뿜어내는 색감도 다양했다. 한적한 숲길을 거닐며 녹색의 푸르름에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아 좋았다. 비가 온 뒤 공기는 꽤나 신선하고 달콤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시간이 멈춘 듯 고요이 좋았다.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 속에서 아이들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 줄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다람쥐처럼 날렵했던 아이는 더 이상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냐고 한다. 집 밖이 가장 위험한 녀석이다.


아들을 움직이게 하려던 내 노력은 완벽한 실패다.


억지로 데리고 나오는 게 힘에 부치자 한동안 둘째 아이만 데리고 다녔었다. 하지 멋진 풍경을 바라볼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여전히 집에 두고 온 아들이 생각났다.


결국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밀크티로 녀석을 유인해 보기로 했다. 청소년에게 카페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커피와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여전히 커피는 안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밀크티는 허락한 것이다.


순박한 녀석은 미끼를 덥석 물었다. 밀크티 한 잔이면 공원에 가는 것도, 마트에 가서 장 보는 것도, 할아버지 할머니 따라서 산에 다녀오는 것도 문제없었다.



동굴 밖의 희미한 빛에 홀려버린 아들은 그렇게 조금씩 바깥세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마트 갈 때에도 주저 없이 따라 나와서 짐도 정리해 주고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준다. 요럴 때면 언제 컸는지 세상 든든한 녀석이다. 바닷가에 가면 모래사장에 글도 써보, 재미없다던 꽃구경도 함께 다닌다. 


아들의 몸뚱이는 여전히 무겁고, 밖에 나와서도 안락한 집을 그리워 하만 녀석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큰 의미 있는 변화다. 녀석은 더 이상 동굴 안에 갇혀있지 않는다.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면서 바깥활동과 휴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함께 주말을 보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엄마의 세상은 아직도 크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무궁무진하단다. 네가 보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트리플'E'와 트리플'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