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시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유난히 빠르게 흘러온 2025년이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유독 분주한 연말을 보냈다.
졸업과 입학이라는 변화를 앞두고 우리 가족도 사부작 거리며 조용히 움직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2026학년도 고등학교 입시를 둘러싼 분위기는 생각보다 팽팽했다. 내신 5등급 제도라는 변화 앞에서 학교 간의 입시 경쟁률은 빠르게 뒤바뀌었고, 그 여파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여전히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는 학교들도 있었지만 선택의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는 학교를 고르는 데 있어 남들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아들에게 꼭 맞는 학교를 찾고 싶었다.
내심 과학고에 도전해 주길 바랐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어렵겠다는 아이의 판단은 단호했다. 녀석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학교를 원했고 우리는 그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
기숙사형 학교는 비용 부담 때문에 제외할 것.
대학 진학률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기에 살짝 비교해 볼 것.
프로그램 구성 및 교육방식이 성향에 맞는지 확인할 것.
그리고 적정한 수준의 등록금.
사실 이 마지막 항목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중요했다. 대학이라는 다음 단계를 앞두고 고등학교 학비에 모든 것을 쏟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목표로 삼은 학교의 입시 설명회를 찾아다니고 우리 나름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아들의 미래를 두고 조금씩 함께 고민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학교에서 '2026학년도 교육감 선발 후기고 신입생 입학원서'를 받아왔다. 그 종이를 손에 쥔 순간, 막연하던 고등학교 이야기가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에 대해 화두만 던졌을 뿐, 이번 입시준비에서는 남편의 공이 훨씬 컸다.
입시 설명회는 번갈아 가며 아들과 함께 다녔지만, 마음을 정한 뒤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지내온 나와 달리 남편은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아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입학원서를 작성할 때도 그 차이는 분명했다. 1 지망, 2 지망 선택에서 나는 단순히 익숙한 학교 이름을 떠올렸지만, 남편은 하나하나 따져가며 학교를 신중하게 골랐다.
아들과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지망 학교를 적어 내려가던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대학입시도 아닌데, 이 일이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몇 차례의 수정 끝에 입학원서를 완성한 뒤, 남편은 우리가 선택한 학교의 전형 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수험표와 필요한 서류들을 꼼꼼히 출력해 왔다.
그 덕분에 나는 한 발짝 물러나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열정에 화답하듯, 아들은 운 좋게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소서(자기소개서)와 면접뿐이었다.
자소서는 이미 학교에서 선생님의 첨삭을 거쳤다고 했다. 제출 전에 한 번 읽어 보긴 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이 크게 어색하지 않아 굳이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가온 면접 전날 밤.
피곤해서 그냥 쉬려고 누웠다가, 불현듯 한 장면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입시 면접을 아이와 함께 준비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모의 면접을 봤다고 했으니, 그때 받은 피드백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말하는 내용은 한 번쯤 직접 들어봐야 하지 않나?'
'아, 피곤한데 그냥 쉴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 사이 나도 모르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 딱 한 번만 보자.
그렇게 방에 있던 아들을 거실로 불렀다.
내가 면접관이 되어 테이블 앞에 앉았고, 아들은 마지못해 장단을 맞춰 나왔다. 구부정하게 들어와서 인사하는 모습에 바로 "스톱!"을 외쳤다.
기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에, 입장부터 실제 면접처럼 해보자고 했다.
대충 하려던 녀석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왔다.
첫 질문을 던지자, 아들은 습관처럼 화려한 제스처를 곁들여 준비한 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등은 구부정했고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잠깐만, 답도 중요하지만 자세도 신경 써야 해. 지금처럼 말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상대방이 알아듣기 어려워. 시선이 자꾸 움직이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니까 집중이 안 돼. 특히 자세가 반듯하지 않으면 자신 없어 보여."
엄마의 신랄한 지적에 아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둬. 시선은 눈을 보되 부담스러우면 코끝을 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목소리 크기와 템포, 정확한 발음이야. 말이 너무 빨라."
뭐야, 나 왜 이렇게 말을 잘하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가 어느새 면접관에 완전히 감정이입해 있었다. 나는 녀석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며 또렷하게 말하는데 집중하게 했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아들도 점점 진지해졌다. 이어 본격적인 질문이 오갔고, 아들은 아까와는 다른 진중한 태도로 대답을 이어갔다.
나는 일부러 조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녀석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받았던 예상질문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답을 정리해 나갔다.
어느새 아들은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실과 방을 오가며 한 마디씩 툭 툭 던지는 남편의 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딸아이와 신나게 웃으며 떠드는 소리도 점점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데 생활기록부에서도 질문이 나온다던데?"
남편의 한마디에 멈칫했다.
생활기록부? 그건 또 어디서 보는 거지. 갑자기 예상 질문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휴대폰으로 다운로드한 생활기록부를 훑어보며 질문을 이어가다 결국 남편과 바통을 터치했다.
아들은 그날 새벽 한 시까지 면접준비를 했다고 한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우리는 조금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정문 앞에서 아들을 배웅한 뒤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과 엄마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기실에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전 면접이 아직 끝나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커피숍으로 오라고 했는데 녀석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연습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난 뒤 준비해 온 책을 꺼냈다. 눈은 책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엄마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 말없이 프린트만 바라보는 엄마와 아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입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이들은 학교로 향했고, 기다렸다는 듯 엄마들이 커피숍 안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오늘 있을 면접과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금세 친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 중학교에서 왔는지,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구석진 2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책장만 넘겼다. 그러면서도 열린 귀까지 닫을 수는 없었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식어가는 차를 홀짝이며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7번째일 거 같다'는 문자 하나 남기고 들어갔을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예상했던 시간은 훌쩍 지났는데도 휴대폰은 잠잠했다. 좁은 카페 안이 답답해서 그냥 나가서 기다릴까 하다가 조금만 더 있어보자 했다.
그렇게 시간과 눈치 싸움을 하던 중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드디어 끝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자, 신기하게도 주변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 안에서 울리는 첫 번째 전화였다.
나는 고생했을 아들을 위해 음료를 주문했다. 잠시 뒤 아들이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면접은 잘 봤어?"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아. 우리 학교 선생님들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예상 문제로 짚어준 게 그대로 나왔어."
"정말? 다행이다, 진짜. 고생했어."
아들의 목소리는 한층 밝아져 있었다. 내가 말해준 대로 목소리를 또렷하게, 속도를 조절하며 말하려고 했고, 자세도 반듯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눈도 한 번씩 마주치며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근데 마지막에 나올 때 선생님 한 분이 문 열어주면서 고생했다고 웃어주셨거든. 그게... 안될 거 같아서 친절하게 해 주신 건 아니겠지?"
"뭐어?"
녀석은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로 진지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밖에서 오래 기다렸는데 춥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그때 혼자 연습하면서 긴장이 풀렸어. 그게 도움이 됐어."
아들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소서는 친구가 봐준 게 도움이 많이 됐고... 면접은 엄마랑 연습한 게 제일 도움 됐어."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피곤함을 버텨내고 함께 연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면접 학원까지 다닌 친구들도 많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걸 실감했다.
대학입시 못지않았던 고등학교 입시의 모든 과정이 끝났고, 이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줄곧 덤덤하게 지내왔던 나였는데 느닷없이 발표를 앞두고서야 갑자기 긴장이 몰려왔다.
별생각 없이 막연하게 '되겠지' 하고 여겨왔던 결과가 만약 뒤바뀐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녀석이 지원한 일반고 1,2 지망은 이미 인기가 많아 정원이 찼을 테고, 여기서 떨어지면 어디로 가게 될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결과 나왔어?
아니.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었는데 왜 떨리지?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일도 바쁘지 않아 시계를 확인할 틈만 많았다. 아들도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아직이라며 투덜거렸다.
드디어 오후 다섯 시 정각.
정각
ㅜㅜ
아......
남편의 애매한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불길한 기분이 들어 내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험번호가 뭐였더라. 잠시 허둥대다 남편이 단톡방에 올려둔 수험표를 찾아냈다.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그곳에는 파란색으로 합격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던 남편은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말을 흐렸던 것이다.
하...
허탈한 웃음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아들의 벼락치기 면접은 성공적이었다. 가족 단톡방에는 곧바로 축하 메시지와 폭죽 이모지가 쏟아졌다.
일단은 끝이 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미 선행 학습을 마친 친구들이 대부분일 텐데, 녀석은 아직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아이는 자기 속도로 또 하나의 시간을 건너갈 것이다. 우리는 그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면 된다.
기나긴 겨울방학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알차게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