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끝에 끓여 먹은 화해의 짜장면
후...
또다시 속이 아려 온다. 나의 존재를 망각한 아이들은 오늘도 내 앞에서 격하게 싸운다.
나 여기 있다고!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메아리친다. 서로의 잘못을 들춰내며 자신을 변호하는 녀석들의 얼굴이 꼴도 보기 싫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 상황 속에서, 싸움을 통제할 능력도 혼을 낼 힘도 잃어버린 나는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화가 잔뜩 올라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아, 요 녀석 발레 하러 가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텐데...'
아침 일찍부터 아빠를 따라 병원 투어를 한 딸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발레 학원으로 가야 했다.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급하게 또띠아를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집에 돌아온 녀석은 간식을 보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엄마, 이제 화 다 풀렸구나. 날 위해 만든 거야?"
'아, 맞다. 나 아직 화난 사람이었지.'
아이들과 냉전 중이라는 사실을 고새 잊어버린 채 또 음식을 하고 말았다.
"아니, 나 아직 안 풀렸는데?"
퉁명스럽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녀석이 나를 붙잡았다.
"아닌데~ 엄마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하는데~~"
"어서 가서 먹기나 해. 이제 나갈 시간이야."
든든하게 간식을 먹은 딸을 차에 태우고 발레 학원으로 향했다. 이미 허술해진 내 마음을 들켜버렸기에 계속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제 엄마 일하러 가고 오빠랑 뭐 했어?"
출근 시간이 임박해 화만 낸 채 집을 나왔던 터라, 그 뒤에 녀석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 물었다.
"화해의 시간을 가졌어."
뜻밖의 대답이었다. 서로 계속 싸우고 있거나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화해라니!
"오빠가 먼저 내 방으로 와서 미안하다고 했어. 오빠가 인성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다른 면도 있더라고. 확실히 고1 되니까 달라진 거 같아."
딸을 통해 아들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 마냥 철없던 아이들이 어느새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모양이다. 괜히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녀석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했다고 한다.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또 싸웠다고 했다.
"뭐? 화해한다면서 또 싸워?"
"나도 생각이 있는데 오빠 생각만 주장하니까 소리를 크게 질러버렸어. 흑화 한 거지. 놀랐는지 그다음부터는 소리를 안 지르더라. 나도 세다는 걸 보여준 거야."
"하여튼 승질머리 하고는..."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 서로 화해의 장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새해를 맞아 한 단계 성장한 녀석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부자가 된 것처럼 묵직해졌다.
"짜장면 봉지도 나와 있던데 누가 끓인 거야?"
"그거 오빠가 끓여줬어. 화해의 짜장면~!!"
배고플 때 먹으라고 사 둔 비상식량까지 야무지게 끓여 먹었다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제는 아이들을 조금 더 믿고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감동 어린 뭉클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전히 녀석들은 투닥거리며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싸움의 끝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니, 나는 오늘도 모르는 척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