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나의 페이스메이커였다.
"왜 운동을 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는 걸까요?"
"그야 충분히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아...
한동안 이유 없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던 시기였다. 의사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운동을 권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준비된 대답을 했다.
3년째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술과 카페인은 끊은 지 10년이 넘었고, 자극적인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저염식을 하는 소식좌로 나름의 식단 관리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운동을 꾸준히 해온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통증과 여러 증상들. 빠르게 늙어가는 몸을 따라가는 일이 버거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한의원에서 "운동이 부족하다"는 한마디를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산소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할까. 막막하던 내 고민의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TV를 켜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러닝 이야기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싫어 애써 외면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보건소에서 무료로 대사증후군 검사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간단한 피검사로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식단과 운동에 관한 상담이 이어졌다.
운동을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자, 상담 선생님은 러닝 어플을 추천하며 '슬로우 조깅'을 권했다.
엄두도 내지 못했던 뜀박질이, 그 말 한마디에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의 조깅은 시작됐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 딸에게 같이 뛰자고 말했다. 녀석은 귀찮다면서도 결국 밖으로 나와 내 옆에 섰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통통 뛰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야.. 왜 이렇게 자세가 좋아?'
엉덩이가 가벼운 녀석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달리기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 왜 이렇게 느려?"
느릿느릿 뒤뚱뒤뚱 뛰는 엄마가 우스운지 신나게 웃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천천히 달리기’를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어플 가이드에 맞춰 걷기와 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딸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내가 엄마 페이스로 달려볼까? 아니, 이건 걷는 거잖아. 그냥 걷자. 내가 걸어도 엄마보다 빠를걸?"
잠시 발을 맞추더니, 이내 까르르 웃으며 다시 훨훨 날아갔다. 신나게 뛰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혼자 달릴 때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호흡을 의식하고, 심박수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딸과 함께하니 그런 것들은 잊히고, 대신 아이가 뛰는 모습에만 눈이 갔다.
30분간 뛰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눈만 마주쳐도 깔깔대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에너지가 넘친 딸은 이렇게 외치며 앞서 달려갔다.
"저기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빨리 가서 먹어야 돼. 안 그러면 뺏겨!"
뛰는 내내 조잘대는 녀석은 운동보다는 엄마 놀리기에 더 집중하는 듯 보였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며 “이게 엄마 페이스야”라고 흉내 내는 모습에 배꼽을 잡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웃고 즐기며 뛰다 보니 힘든 줄 모르고 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도 저렇게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아랫배에 힘을 단디 주고 딸과 같은 속도로 달려봤다. 금방 숨이 찰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나도 빨리 달릴 수 있네?"
내 몸의 무게가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순간이 행복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희망이 보이자,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딸은 최고의 페이스메이커였다.
날이 풀리면 한강에 나가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이 러닝에 빠지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