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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May 01. 2024

공부가 하기 싫은 아들에게..

너의 첫 중간고사

구청에서 대학교 캠퍼스 투어 참여자를 모집다는 문자가 왔다. 평소 구청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다. 이번 역시 왕이면 최고의 학교에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대 캠퍼스 투어'를 신청했다. 아들은 학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를 하는 눈치다.


하지만 아쉽게도 추첨에서 탈락됐다. 녀석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는데 며칠 뒤에 전화가 왔다. 추가당첨서 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녀석이 재빠르게 학생증을 가지고 왔다. 필요한 서류를 빨리 찍어서 보내란 뜻이다. 뛸 듯이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


서울대 학식을 먹는 것이 그렇게 좋단 말인가..


투어 당일날 아침, 몇 가지 되지 않는 티셔츠를 늘어놓으며 왜 옷이 전부 휴양지에서나 입는 것들 뿐이냐며 타박하기 시작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무채색 티셔츠밖에 없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등에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텐트그림을 가리키며 이런 건 캠핑 갈 때나 입는 거 아니냐고, 분홍꽃이 수줍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보며 놀러 갈 때나 입는 거라고.. 서울대 가는데 최적화된 티가 하나도 없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니, 서울대 티셔츠가 따로 있는 거야? 렇게까지 진심이었다니.. 끝까지 안 됐으면 어쩔 뻔했어..


아들은 스트라이프 폴로티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입을 씰룩이며 모임장소로 나갔다. 도착즈음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좀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녀석이 서울대 정문을 차 안에서 찍은 것이다. 녀석의 설렘지수가 느껴졌다. 오전에는 캠퍼스를 누비며 곳곳을 구경했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메뉴는 치킨마요덮밥이라고 했다. 치킨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맛있었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사진을 보내준 녀석 덕분에 나도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은 재학생 멘토와 함하며 인생에서 값진 경험을 하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이 헛되지 않고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이 보내온 사진


신나게 미션도 수행하며 무사히 캠퍼스 투어를 마친 녀석은 집에 와서도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마지막에는 골든벨도 했는데 앞에 나가서 정답을 많이 맞혔다고 했다. 상품은 없지만 아들이 속한 팀이 1등을 했다고 했다. 장하다~~~!!


"서울대 갔다 왔는데 느낀 건 없어?"


"확실한 건 서울대는 못 갈 거 같아요!!"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녀석!


더 열심히 해서 꼭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좋은 학교에 가서 꿈을 펼쳐보자 하는 게 아니고, 못 갈 거 같다니!


지극히 초현실주의자인 아들다운 대답이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 첫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녀석은 시험공부를 게을리했다. 시험유형 모르니까 준비를 더 해야 할 텐데, 녀석은 시험 일주일 전까지도 천하태평이었다. 평소에는 과제며 수행평가며 준비할 것이 많으니 시험 일주일 전부터라도 공부를 했으면 했다. 타들어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 안에서 노트북만 붙잡고 있다.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서 시험 전 마지막 주말이 되었다. 드디어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녀석이 가지런히 정리한 과학노트를 가지고 왔다. 너무나도 예쁘게 정리한 노트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노트 정리는 평상시에


"잘했어! 깔끔하게 잘 정리했네? 그런데 이런 건 평상시에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시험 전이니까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지.." 절반 이상이 깨끗한 문제집이 아까울 지경이다.


"시험전날에 보려고 정리했어요."


아... 그래.. 정리하면서 공부가 됐으면 된 거지.. 그러니까 노트필기는 평소에...


녀석에게 들리지 않을 잔소리를 그만두었다. 우왕좌왕 첫 시험을 치른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줄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녀석이 가져온 시험지를 채점했다.


아니 근데 왜 계속 동그라미만 나와? 공부도 안 했는데, 대체 데 성적이 잘 나오는 거야? 정확한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가채점 결과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점수가 이렇게 잘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녀석이 한 노력에 비해 과분한 점수가 나왔다. 유일하게 수학점수가 낮은데 행히도 수행평가 점수가 높아서 최종으로 원하는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녀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뭔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중간고사가 끝이 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기말고사를 준비해 보자고 했다. 집에 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문제집을 풀어보라고 했다.


"공부를 하기까지가 힘들어요."


결국 아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녀석은 집에 오면 스스로 앉아서 공부를 하기까지 몸이 안 움직인다고 했다. 머리는 분명,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움직이라는 명령어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학원가가 형성되어 한창 번성할 무렵, 영문도 모른 채 엄마손에 이끌려 여러 곳의 학원에 다녔었다. 학교 끝나면 놀 시간도 없이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야 했다. 관심밖의 것들을 배워야 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에 재주가 없고 흥미도 없었다. 설상가상 선생님도 무서워서 그 시간이 지옥과도 같았다. 종합학원이 인기였던 그 시절.. 나에게 맞지 않는 단계의 수학을 배울 때가 생각다.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해 주는데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어로 들렸다. 당연히 영어시간 안드로메다은하에 다녀온 기분이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빠져버린 학원투어는 심신을 지치게 만들 뿐 아니라 반항심까지 싹을 틔웠다. 살면서 큰 반항을 해본 적 없는 내가 소소하게 학원을 빼먹고 친구들과 놀면서 일탈을 즐겼다. 나의 청소년기는 그렇게 헛된 시간들로 가득 찼다.


아무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하라고만 강요할 뿐.


누군가 내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빙빙 돌아오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네가 하는 고민과 생각들은 미래를 위한 작은 날갯짓이야. 아무런 고민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는 것이겠지.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은 잠시 너의 꿈이 혼동되어 이유를 찾지 못해서 일거야. 힘들면 잠시 쉬어가되, 매일을 헛되이 보내지는 말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 지금을 소중히 여겼으면 해.. 


너의 힘듦을  인내하며 견뎌내야 하는 것은.. 먼 훗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보다  멋진 자신을 만나기 위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너를 항상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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