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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n 19. 2024

그래서, 산타할아버지는 어디에 있냐고요?

크리스마스의 추억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매장에 가서 고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 단 한번 진심으로 믿었던 적이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오늘 밤 산타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갈 거라고 하셨다.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우리 집에 오신다니! 하루종일 기대하고 들떠있던 나는,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서 결국 산타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센스 넘치는 어머니께서 잠든 나를 배경으로 양손에 선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동생과 함께 찍은 산타할아버지 사진을 기념으로 남겨주셨을 뿐이다.



아이들에게는 나와 다른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게 해주고 싶었다. 큰아이가 걷고 말하고 기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깜짝 선물을 준비해 줬다.


캐럴을 들으면서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곤히 잠든 아이들의 머리맡에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조용히 놓아두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이들은 쁨을 감추지 못하고 선물을 들고 뛰쳐나왔다. 곱게 여있는 포장지를 과감하게 풀어헤친 뒤 녀석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아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평생 갈 것만 같았던 우리의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얘기한 모양이다.


사실대로 말해주고 싶어도 작은 아이가 어리기에 조금 더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영특한 큰아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산타의 존재를 캐기 시작했다.

아들의 정성스런 편지


To. 산타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산타할아버지~
저 00이에요. 매년 선물 주셔서 감사해요.^^
올해도 주실 거죠? 죄송합니다~
아! 산타할아버지! 밑에다가 선물이 뭔지 써주실 수 있나요? 써주시면 감사하고요.^^
이 편지는 내일 밤에 가져가 주세요~
사랑해요.^^

From. 00 올림
산타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는 00이에요!
매년 비싼 선물을(작년 RC카는 저~엉말 대박이었어요!)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리는 못 꾸몄지만 색종이로 트리, 순록, 산타할아버지, 썰매, 종 등을 접었어요. 그동안 주신 선물을 보답으로 귤 2개를 드릴게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00 올림


아들은 매년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그 처음은 훨씬 이전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종이에 간단한 편지를 썼는데 '비타민 드시고 힘내세요!'라고 쓰고 진짜 비타민을 테이프로 붙여두었었다. 당시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편지를 쓸 때마다 녀석이 산타의 존재를 알고 쓰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인증사진은 필수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다니는데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잖아요. 어떻게 들어오는 거예요?"


난감하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 당황스럽게 만든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안 된다. 버벅거려서도 안된다. 녀석은 눈치가 백 단이다.


"어떻게 들어오긴~ 엄마가 문을 열어드리는 거야.. 굴뚝으로는 정말 옛날에나 다니셨겠지. 요즘 굴뚝 있는 집은 없잖아."


후~~ 적절한 타이밍에 명쾌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산타는 썰매를 타고 다니잖아요.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아이들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에 다니시는 거란다."


"엄마! 제가 받은 선물에는 한국말이 쓰여있는데요? 산타는 외국분이잖아요?"


"응~ 맞아.. 너희가 원하는 선물은 국내에 있잖니? 엄마가 선물 리스트를 보내면 산타할아버지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서 사 오시는 거야."


하~~~~!! 질문의 끝은 없는 걸까? 질문이 집요해질수록 나의 대답도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올해는 코로나니까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세요?"


좋은 질문이! 코로나를 빌미로 선물을 건너뛸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네~ 올해는 코로나로 이동이 불가피하니까 선물을 못 받겠구나. 어쩔 수 없지 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


"근데 요즘은 정보화시대잖아요. 택배로 보내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 녀석은 이미 산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년 계속되어 오던 우리만의 진실공방은 사실.. 아들의 잔머리에 되려 내가 속았던 것이 아닐까..?


결국 작은 아이도 산타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처음으로 함께 손잡고 마트에 가서 각자 원하는 선물을 사주었다. 시원섭섭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는 어쩌면 남편과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몰래 선물을 사서 포장을 하고 편지도 쓰며 행복했다. 천사처럼 잠든 녀석들 머리맡에 선물을 올려두고, 다음날 아침 신이 나서 풀어 볼 녀석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잠을 청하던..


설렘 가득했던 우리의 '크리스마스선물 007 작전'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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