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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Nov 08. 2024

INTP의 여행 계획서

경주, 역사는 계속된다. 1

아들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경주여행을 벼르고 있었다. 유난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을 위해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었다. 리가 멀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다 보니 조금씩 잊히고 있던 중 에게  일주일의 휴식기간이 찾아왔다.


재량휴일.


퐁당퐁당 쉬는 날이 많았던 이번 연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에 곱게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정보들을 쓸 기회가 왔다. 남편에게 일정을 확인한 뒤 무작정 숙소부터 잡았다.


유후~! 드디어 간다! 경주~!


"우리 경주로 여행 갈 거야. 이번 여행은 네가 계획을 짜보는 건 어때? 그동안 엄마, 아빠만 따라다녔잖아.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갔던 곳도 있을 테고... 이번 기회에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가보는 거야. 우린 가자고 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다닐게."


사실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는 정해져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딱히 동선을 짜는데도 무리가 없다. 굳이 정을 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계획을 세우면서 장소를 직접 선택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뭐라도 배워가는 것이 있다면 큰 학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 그냥 정해진 대로 따라가면 안 돼요?"


INTP 다운 발언이었다. 만사가 귀찮다는 아들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에만 있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맞아. 비싼 돈 내고 가는 숙소인데 즐길건 즐겨야지. 모처럼 떠난 여행인데 물놀이도 해야 하지 않겠어?"


이때다 싶어 녀석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보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시간과 도착 예상시간, 숙소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 현지에서 출발 예상시간등 정해져 있는 굵직한 시간을 얘기했다.


휴대폰 속에 고이 모셔 놓은 수많은 식당과 핫플 정보 중에서 꼭 가보고 싶은 음식점과 카페를 하나씩 선정해서 참고자료로 보내주었다.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문무대왕릉 - 천마총 - 점심 - 풀빌라

첨성대는 야경

둘째 날

카페 - 불국사&석굴암


세상 단순한 아들의 첫 일정표다.


석의 성격대로 시간 따위는 적지 않았다. 핵심 장소만 콕콕 박아놓았다. 카페 같은 데는 왜 가냐며 질색팔색 했지만 엄마가 가보고 싶다고 하니 일정표에 넣어주었다.


그래! 이번엔 아들의 계획표대로 다녀보자.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처음 가는 경주에 아이들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딸아이는 가는 길에 먹을 간식을 챙겨야 한다며 마트에 가자고 했다.


"그럼 딱 1개씩만 사는 거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데 어째 초콜릿 코너에서 발길이 떠나질 않았다. 에너지 보충에 좋은 단백질바를 집으려 하자 아들이 질색팔색 했다.


어차피 먹고 싶은 것을 사도 나눠먹을 거란 걸 아는 우린 암묵적으로 서로 사려고 하는 간식을 견제했다. 딸아이가 화이트초코바를 집으려 하자 아들과 내가 동시에 만류했다. 화이트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감정이입이 된 우린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각자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것을 조목목 따져가며 참견했다.


사고 싶은 거 한 개씩만 사기로 해놓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싸움을 중재하던 남편은 포기한 듯 먼발치에 서서 이 말도 안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결국 처음 말한 대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뒤에야 계산대로 갈 수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그제야 조금 전의 상황을 깨닫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올망졸망한 사람 셋이서 서서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그 소란을 피운 건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를 뜯어말리지 않고 관망한 남편게 괜히 한소리 했다.


"왜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어?"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들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다. 작은 것 하나에도 진심인 우린 참으로 쓸데없이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이번 여행을 가서도 얼마나 피 터지게 싸울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우리 이번 여행에서 만큼은 제발 싸우지 말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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