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제.

by twentieth century boy

"롱디", 풀어쓰면 롱 디스턴스(Long Distance).


대학교 시절, 연애 중인 애들 사이에서 저 단어는 조금 로맨틱한 느낌으로 존재감을 내뿜던 것 같다. 지금도 별반 다를 건 없지만, 당시 학생이었던 우린 여러모로 불안정했다. 언제나처럼, 막연하지만 해야 할 일들에 쫓기고 있었다. 그래도 보통은 뛸 힘이 아주 충분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나의 친구들이 1, 2년 정도 어디 먼 곳으로 훌쩍 유학을 떠나도, 그들의 연인은 그렇게 불안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시차', 보통 우리의 출처인 한국과 조금은 멀리 떨어진 그 장소들 사이에는 한나절 정도 시간이 어긋나 있었다. 한 명이 잠을 잘 때 다른 한 명은 눈을 뜨고 일상을 보내야 했고, 몇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엔 서로 역할이 바뀌었다. 물론 혼자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아졌어도 잠깐의 접점은 있었다. 한 명이 잠들기 전, 또 다른 한 명은 잠에서 깼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서로가 나누던 단어 수도 줄었지만, 그 짧은 시간이 떨어져 있는 그들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찌 보면 놀라운 일.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녀는 중국에, 나는 이곳에 남았다. 기간은 1년.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차는 1시간뿐이었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의 크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었고 큰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만나지 못할 뿐이었다. 딴 애들에 비해 나은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조합은 특이한 방식으로 우리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다.


함께하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떨어지게 되었으니 우린 더 많은 말로 일상과 마음을 나눴다. 그런데 말이 많아지니 되려 말실수가 잦아졌다. 뿐만 아니라 그 실수를 풀기 위한 말들 또한 점점 증식해 나갔다. 하지만 만날 수가 없으니 그 말들은 점점 말 뿐인 말들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꽤나 골치 아프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우린 다시 원래에 있던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이전 같지 않다는 점. 지난 1년간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탓에 우린 왠지 말이 없어졌다. 말이 없어지니 밑천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바닥 가장 깊은 곳에선 우리 관계를 지탱해준 것이 수많은 말 뿐이었다는 지독한 현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녀가 중국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헤어졌다. 떨어져 있던 1년 보다도 짧은 기간이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Out of sight, out of mind란 말이 오갈 때면 "그렇구 말구" 했던 내 마음은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가까워지고 난 뒤에야 우린 서로가 얼마나 먼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아니, 실은 사건의 파장엔 시간차가 존재하는 걸까? 뭐, 평생 알 수 없는 일이겠지.


아무튼 그때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물리적 거리가 관계의 거리감까지 정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먼 곳에 한 사람이 있다.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달라진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하나, 그건 전부 마음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이적 X 오혁 -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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