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아들의 삶

by 권배

아버지, 아들 권배입니다. 낯설고 머나먼 부산, 어두컴컴한 납골당에 마치 노숙자처럼 모셔져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되는 지금, 당신이 그립고 미안해서 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했던 유언을 기억하고 있어요. 하늘에 가면 반드시 아들 정규 선생님 만들어주겠다고. 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아들은 언제 도와줬냐면서 모질게 떠나갔었는데 그 일이 무척이나 후회됩니다.


1996년 겨울, 제가 11살 때, 아버지가 가족들을 폭력으로 멍들게 하고 떠나갔던 일을 기억해요. 저는 당신께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엄마 그만 때리라고 죽어라 외쳤죠. 아들의 절규를 듣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집을 나가던 당신의 모습이 제 기억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삶을 살아오셨어요. 어머니는 저를 외할머니께 맡기고 밤낮없이 일하며 돈을 벌어오셨어요. 외할머니 댁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매달 30만 원씩의 생활비를 어김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헌신적인 어머니께 감동하며 엇나가지 않고 공부하려 애썼습니다. ‘나는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지’, ‘내 주변 사람만큼은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불행한 아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키워왔던 꿈은 바로 ‘가정적인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어머니가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없는 살림에 사교육 없이 대학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럽다고 어머니가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들었더라면 현재 우리 가족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네요.


그런데 아버지, 저는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이 이렇게 냉혹할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없던 24년의 세월 동안 삶이란 것이 어찌 이리 힘이 들까 고민 많았습니다. 제 나이 서른넷, 대학 졸업하고 9년에 접어듭니다. 그동안 인력사무소, 상수도 회사, 중소기업 취직, 택배 아르바이트 등 성년 남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접해본 것 같아요. 방과 후 강사, 시간강사, 기간제 교사 등 중등학교에 설치된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고 근무했습니다.

거의 10년의 직장생활 동안 잘한 일이 있다면 퇴근 후 도서관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도서관은 나의 존재 이유이자 꿈의 장소였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교사라는 꿈에 다가갈 수 있어 기대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했던 중요한 과업은 정규직 교사 되는 시험인 임용고시 공부였습니다.

9번의 임용고시 기회 중 필기시험만 6번 합격했습니다. 남들은 필기시험 한 번 합격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저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거의 매번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 위치는 언제나 떠돌이 기간제 교사예요. 필기시험이 끝나면 합격자를 모아놓고 수업실연과 면접을 실시하는데, 저는 마지막 시험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요. 실제 교사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저는 6번이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답니다. 안타까우시죠?


최종 시험을 잘 못 보았던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어요. 2년 전, 아버지가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거의 20년 만에 저를 찾아오셨을 때, 당장 떠나라고 소리친 저를 기억합니다. 이런 마음도 있었어요. 빠른 합격을 하고 아버지를 찾아갔다면 아버지가 죽은 몸이 아니었을 텐데.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아버지를 태우고 연고지셨던 낯선 부산 땅까지 가서 울분과 원망, 미안함이 담긴 욕설을 퍼붓고 떠날 때가 있었지요.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해줄 수 있다면 하나뿐인 아버지가 제 삶에 크게 자리했겠지만, 저는 그마저도 거부하고 도망쳤습니다.

아버지, 아들에게 원망이 크셨죠? 사실 당신이 저를 찾아온 날은 은행에 차압당한 전세금 때문에 당장 살집을 찾아 길거리를 뒤적거렸던 날이었습니다. 어머니 또한 당뇨와 저혈당으로 목숨이 위태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항상 못난 아들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저로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걱정해야 했습니다.

부모 하나 잘 모시지 못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최종 시험을 제대로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부모의 얼굴이 제 목소리와 답변을 자신 없게 만들었고, 너무 큰 후회를 스스로에게 선사했습니다. 아버지를 거부하고 시험을 잘 응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제 자신에 대한 못 미더움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죽었다 깨어나셨어요. 의식을 잃어 대학병원까지 달려가 수술 여부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이런 일을 겪으니 또 당신이 생각났어요. 이제는 하늘도 어머니를 데려가려 하는구나. 깨어난 엄마의 모습은 유아와 같았습니다. 엄마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낯선 여자 아이만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아들을 알아보고 아들이 현재 중학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근 2년째인 지금, 저는 당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새벽 12시에 잠에서 깨 독서실에 도착하고, 출근 시간까지 고시 공부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로 이동하여 수업하는 삶, 계속 걸어왔던 떠돌이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공부할 때 울컥거리기도 해요. 왜 나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집안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동년배들은 자리 잡고 행복한 가정 꾸리면서 살아가는데 왜 나만 이렇게 독서실에 처박혀 있을까.


아버지, 그런데 저 행복합니다. 왜 행복하냐고요? 우선 제 몸이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잖아요. 꼬박 밤을 새워 출근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있잖아요. 그리고 실력도 있잖아요. 언제나 활기찬 수업하는 교사이고 연말이면 필기시험에 척척 합격하잖아요. 또 있잖아요. 학생들을 사랑할 줄 아는 교사잖아요. 수업내용보다도 학생 삶의 경험을 중시하는 선생님이잖아요. 함께 나누고 웃고 아파하고 살아있는 수업을 하는 최고의 교사잖아요. 마지막, 제 마음속에 둘도 없는 가족이 자리하고 있잖아요. 아이 같은 우리 엄마가 나를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가끔씩 묻혀있는 아버지에게 가서 고민을 털어놓잖아요.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면 볼 수 있겠죠? 저는 그날을 준비해요. 당당하게 아버지 얼굴을 보면서 말하고 싶어요. 누릴 것 없는 삶이었지만 그 자체를 사랑했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이렇게 말하면 칭찬하시겠죠? 아들 잘 살아왔다고요.

자랑스러운 아들은 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도전해요. 공부하고, 출근하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가 되어주세요.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당당함으로 변화하게 도와주세요. 아들이 인생관과 교직관을 뽐내서 면접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세요. 학생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아버지.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못난 아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떠나셔야만 했던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부산에 한번 찾아갈게요. 하늘나라에서의 삶이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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