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 선생이 빚는 그릇

by 권배

나는 떠돌이 기간제 교사다. 연말이면 백통 정도의 이력서를 전국 학교에 넣고 합격을 기다린다. 계약된 근무 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떠난다.

나이 서른넷,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덧 9년이 지났다. 이룬 것이라곤 몇 년의 일반 직장과 기간제 교사의 경력, 변변찮은 교사 임용고시 경험뿐이다. 혹자는 말한다. 맨날 학교 뒤치다꺼리하는 삶보다는 다른 직종에서의 근무가 낫지 않겠냐고. 맨날 떨어지는 시험보다는 다른 채용이 낫지 않겠냐고. 항상 답변 거리는 있다. “제 그릇을 만드는 중입니다.”

선생님의 삶을 한 번쯤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루한 수업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방편은 되지 않을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누구든 우리가 사는 이유에 대해 대화할 준비는 늘 되어있다.


11세 이후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외할머니 댁에 나를 맡긴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러 도시로 떠났다. 급식비가 아까운 나는 점심을 굶고 다녔다. 하루는 일진 놈들에게 걸려 한바탕 얻어맞았는데, 점심시간에 혼자 다닌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급생에게 처참히 맞은 일이 분했다. 선생님을 믿고 익명으로 편지를 썼다. 친구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진이 있으니 조용히 학교폭력을 해결해달라고 적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선생님은 학급에서 내 편지를 읽어버렸다. 그리고는 성난 얼굴로 일진 녀석들의 뺨을 수차례 갈겼다. 얼굴이 벌게진 그놈들은 나를 쏘아보았다. 일이 틀어진 후 중학교에서의 시간은 가혹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고민은 이어졌다. ‘성장의 고통을 겪는 학생을 알아보고, 그것을 보듬는 선생님’이라면 괜찮았을까? 나라면 방안을 찾아줄 수 있었을까? 고민은 지금까지다. 그 답안을 찾는 과정은 삶을 꾸려가는 원동력이자 교직관이 되어갔다.

진정한 교사가 되려면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부든 사회생활이든 뭐든지 말이다. 좋은 그릇을 빚어야 지혜가 물들고 아이를 포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의 도전은 ‘계획’이었다. 엄마는 벽에 붙여놓은 계획표를 물어보곤 했다. ‘명문고 진학 → 사범대 졸업 → 좋은 선생님’이라는 계획표였다. 밤낮으로 일했던 엄마는 시간이 갈수록 체중이 줄어갔지만, 아들 녀석 키우는 보람은 커져갔다.

질그릇을 만들기 위한 두 번째의 실천은 현재의 ‘극복과 성찰’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소심한 삶의 자세를 바꾸려 부단히 도전했다. 처우와 근무조건, 남의 이목은 논외였다. 오로지 스스로의 발전만을 위해 자원하고 이겨내는 삶을 선택했다.

성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타인의 삶도 접하게 되었다. 어렵사리 성취한 사람들의 자세를 배우면서도 좌절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두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미래에 끌어안아야 할 아이들의 모습일 수 있었다. 성찰과 반성의 안목이 선한 영향으로 아이들에게 반영되기를 염원했다.

단단한 그릇 만들기의 마지막은 정규교사가 되기 위한 ‘도전’이었다. 정규교사가 학생을 위해 쏟을 수 있는 여력은 간제 교사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약 10년간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꾸준히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퇴근하면 도서관으로 직행하여 새벽 밤 지새우고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총 9번의 시험 중 6번의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최종 관문까지 올라섰으니, 누군가가 들어도 그 열성은 알아줄 만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탓이었을까, 도전은 아쉽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식교사가 되는 막차 관문에서 번번이 탈락하고만 것이다. 남들은 필기시험 한번 붙는 것도 무척 어려워하는데, 유달리 나는 다 합격해놓고 말만 잘하면 되는 최종 면접시험에서만 탈락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노력과 재능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한풀이 터지는 건 숨길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참 열심히도 달려왔다”는 내면의 외침으로, 울컥거림은 잠시 목 넘김 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독서실에 갈 채비를 한다. 올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지금 삶에 책임지기 위한 발버둥이랄까, 그 책임감은 그릇에 이렇게 담겨 있다. ‘꿈’에 대한 책임 한 꼭지-학생이 울지 않도록 교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겠다는 다짐. ‘가족’에 대한 책임 한 움큼-삶은 자기만의 것이 아닌 이유가 분명히 있다. 아울러 ‘시간’에 대한 책임 한 무리-애써준 시간에 고맙고 미안해서 포기라는 말은 돌려보냈다.

얼마 전에는 살가죽만 남은 아버지가 20여 년 만에 돌아와 장례를 치러드렸다. 쓰러진 어머니를 업고 대학병원에 달려가 울부짖은 나날도 있었다. 치매 걸린 할머니는 돌볼 길 없어 요양원에 모셨다. 후~ 나란 놈은 그릇을 제대로 빚어온 걸까? 얼빠진 그릇을 구워온 걸지도……. 그런데 깨진 그릇이더라도 서로 붙이면 무언가 주워 담을 정도는 된다. 보완을 거듭하면 종국에는 이뤄내지 않을까 싶다.

결과가 중요하지만 꼭 결과만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성취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노련하게 살아왔다면 이후의 삶이 지혜로울 수 있다. 어두컴컴한 동굴에서도 한줄기 빛이 있다면 곧장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오늘도 독서실 어둠을 헤치며 그릇을 빚는다. 마음 아픈 녀석들을 감싸줄 다정한 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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