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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an 06. 2021

나르시시즘적인 치유

- 작가 남궁인에 대하여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에 대해서는 강서구 pc방 살인의 피해자 담당의로서 쓴 글에서, 중국 신장 위구르에 세계 테마 기행 촬영을 갔을 당시 막 코로나로 발이 묶여있을 때 쓴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겨냥하듯 지독히 정갈한 글 말이다. 또 이번에 정인이 사건의 담당의로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이 정도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 학대 소견이라는 말로 분노를 표현한, 아마 시청자들이 놀랄까 봐 더한 말은 참는 듯한 그의 인터뷰를 통해 문득문득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은 작가로서의 이력이 궁금하여 읽은 그의 책 <지독한 위로>는 근래에 읽은 책 중에 어떤 의미로는 가장 치열한 책이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고 빽빽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긴급하게 돌아가는 응급실 상황에 대한 치밀한 묘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 보다도 모든 슬픔과 불행에 대한 목도에서 비롯된 치열한 글쓰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불행이 닥친 매 순간을 강박적으로 기록했던 의사이자 작가인, 아니 작가이자 의사인 그의 글쓰기에 빽빽한 고단함과 빽빽한 자아가 묻어났다. 그는 대체로 빽빽한 자아 때문에 빽빽한 고단함을 겪고 사는 듯 보였다. 매일 매 순간 닥친 불행에 대한 그의 모든 감각은 완벽하게 생생하고 날이 선 집념 같았다. 그래서 읽기 힘들었고 그래서 읽고 말았다.



  어느 강연에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시인이 되고 싶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쩌다 수능 성적이 생각지도 않게 너무 좋았던 바람에 이 정도면 의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의대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삶과 죽음의 최전방에 있고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가장 먼저 급박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는, 병원에서 가장 먼저 불평등을 만날 수 있는 그곳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의사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응급한 시간이 지나면 암흑 같은 방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자고 깨서는 오로지 글 쓰는 일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 시를 읽으며 그 시에 쓰인 언어가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는데 문득 내가 글을 좋아하게 됐던, 내가 글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와도 닮아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글을 못 떠나고 있다. 글을 읽는 행위도, 글을 쓰는 행위도 말이다(이 고백은 참 수줍다).

  

  그도 그랬다.

  그의 책은 의사가 쓴 응급실의 이야기지만 그가 얼마나 한 문장 한 문장을 아름답게 비유로 공들여 썼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언어를 대하는 그의 서정적인 태도와 감각이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은 명백히 응급실에 관한 이야기지만 의사로서 쓴 책이 아니라 작가로서 쓴 책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는 단순히 응급실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라기보다, 큰 소리로 오열하는 슬픔과 벼락같이 닥친 불행을 오롯이 목도한 자의 감정 빽빽한 밀도에 대해 읊고 있었다. 그의 글은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과 그 본질을 바라보는 자아에 대한 글이다. 본질에 대한 본능적인 고찰과 사유, 본질을 바라보는 고단한 자아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는 그런 자신에게 많이 취해있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나르시시즘적인 글이다. 어쩌면 글은, 그에게 나르시시즘적인 치유의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거 같다. 이슬아 작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더라. "남궁인이라는 사람의 고유성이 그 책들의 진짜 주제다. 그의 고유성은 좀 피곤하고도 흥미롭다"라고.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꽤 좋았다. 그래서 모두들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의 급박한 죽음에 대한 슬픔과 놀라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는 뜬금없이 작가로서의 남궁인을 읽고 있었으니까. 그의 다른 글들이 조금 궁금해진다. 앞으로 작가로서의 행보도 말이다. 조금 피곤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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