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나는 꽤 긴장이 많은 편이다. 가끔 쫄보스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완벽주의기도 해서 나는 나를 꽤나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 성실한 타이틀, 칼 같은 약속, 책임감의 굴레 따위들이 나를 얼마나 옥죄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냐면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여유와 기능적인 유연함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예전과 같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어릴 때 나는 꽤 많이 순종적이며 착했고, 요구가 많지 않은 아이였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남들이 눈치 못 채게 혼자 재빨리 알아차리고 발을 들여놓아야 할지 아닐지를 재빠르게 판단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스물이 넘어 나는 나에대해 새롭게 정의내렸다. 내가, 이토록 디테일하게 충만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화르륵 거리며 까탈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나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깨달았었다. 그 처음이 어렵지 그 뒤로 나는 쭉, 꽤나 분명하고 디테일하며 까탈을 부리는 쪽이었다. 어찌 보면 나의 순종은 끊임없는 불안을 통과한 자의 빠른 수긍과 타협의 다른 이름이었고 평균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한 재빠른 굴종이며, 경직과 경계에 대한 흔한 변명 같은 것이었다.
오래 들끓었고, 무엇이 나를 누르는지 잘 몰랐다. 봉인된 감정은 사실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우리 집 첫째 아들을 보면 늘 제멋대로이다. 누가 뭐라든 좋아하는 일에 혼자 완벽할 정도로 골몰하고 집중한다. 외골수적인 기질도 있고 불편한 것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신경질에도 제법 유능하다. 이 아이처럼 신경질을 장착하고 있는 아이도 드물 것이다. 이 아이를 낳고 거의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늘 예민한 아이라서 마치 밤에도 깨어있는 것 같았다. 실눈처럼 예민한 성격이 밤중에도 예민한 기운을 뿜고 있는 느낌 말이다. 소리를 지르거나 대화를 하거나 뒤척이는 정도가 남달랐다. 그래서 아이는 체중도 키도 남들보다 작다. 나는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왜 잘 자라지 않을까. 그 해답을 이제야 나름대로 찾았다고 본다. 아이는 몸에 비해서 에너지를 늘 너무 많이 쓴다. 가만히 앉아서 놀 때도 이 아이는 심심하고 심드렁한 느낌이 아니라 완벽한 집중을 하고 있고, 그 작은 키와 작은 체중으로 어떤 운동도 남들에게 뒤쳐지질 않는다. 승부욕이 언제나 자신의 몸을,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잘 때조차도 가만히 누워있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에너지가 몸을 뛰어넘는구나. 그래서 아직 클 수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 때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또래 엄마들처럼 나도 내 아이가 천재, 영재쯤 되는 줄 알았다. 이 아이가 5-6살 즈음에 차를 너무 좋아해서 차에 한창 미쳐있었더랬다. 모든 종류의 차를 외울 뿐 아니라 차 내부의 구조와 이름까지 꿰뚫고 있었고 밤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차의 전조등이나 미등만 보고도 차종을 신기하게 다 맞췄더랬다(믿지 못한 남편이 내려가 확인까지 하고 말이다). 드릴 크레인, 기중기, 레미콘, 도로 살수차, 노면청소차, 탱크로리, 너클 크레인(분리수거할 때마다 아이는 넋을 놓고 봤다. 언젠가 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었지 아마) 앞에서도 아이와 함께 멀뚱히 앉아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 아이의 명석함에 얼마나 속으로 우쭐했는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한다. 이 아이는 한 번도 천재였던 적도, 영재였던 적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부류였다. 이후에도 아이는 무언가에 몰입하면 적어도 1-2년은 하루 종일 미친 듯이 그 일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 그림을 좋아할 때는 거의 1년을 그림만 그려댔다. 이 아이에게 그림에 소질이 조금 있는 듯하여 미술학원에 보내볼까 했는데 아이는 처음부터 거절이었다. 자기 그림에 손대는 게 싫고 누군가가 간섭하는 게 못마땅한 것이었다. 종이로봇 만들기에 빠져있을 때에도, 하루 종일 총 만드는 데에 온 신경을 다 쏟아붓는 요즘도 이 아이의 집요함에 가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럴 때마다 문득 아이의 손목, 손등, 손아귀, 손가락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한때 아이가 미친 듯이 만들었던 종이로봇
이 아이를 볼 때마다 가끔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집요함과 예민함을 장착한 채 혼자 등을 돌리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 낯설어서 말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늘 눈치 보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느라 끝없이 성실했던 나 자신과 비교가 되어 나는 이 아이가 부러우면서도 미웠던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무신경하게' 자기 일에만 몰두할 수 있지. 왜 저렇게 제멋대로지. 다른 사람은 왜 신경 안 쓰는 거지. 그만해도 되잖아,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하고 아이 모르게 아이 등 뒤에서 나는 모나게 아이에게 눈을 흘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아이의 '집중'하는 '순간'이 부러워서, 더 정확히 '자신의 욕구에 몰입'하는 아이의 마음 상태가 너무 질투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아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내가 누려보지 못했던 감정을 아이는 자연스럽고도 너무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다. 나는 기껏해야 자기 연민이나 설움 따위의 단어들에 기대 굶주린 채 살았는데 말이다.
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에게 보름달 같은 충만한 사랑을 부어 주었다. 그렇지만 그 마음 이면에는 늘 아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있었다. 융통성 없고 예민하고 집요하고 게다가 억눌린 욕망 따위, 불화 따위 없는 이 아이의 삶이 대체로 부러웠다. 나와 나의 상황에 대해 쓸데없이 관대해지지 않아도 되는, 이해와 깨우침에 대한 강박이 없는 삶, 부모인 내가 그러한 삶을 아이에게 주고도 나는 내내 그것이 퍽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이와의 갈등은 사실 그런 것이었다. 내가 아이와 대치 중일 때도, 아이의 무엇을 판독하지 못할 때도 대부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꽤 오래 이 아이에게, 내 봉인된 감정을 피해자의 모습으로 투영했다. 내가 오랫동안 나에게 바랐던 일은 견딜만한 용기나 힘이 아니었다. 부끄럽고 불편했던 일들을 정확하게 언어화하고,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는 나보다 더 깊고 본능적이다. 내가 중간에서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늘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쓸데없이 철들지 않고 유용하고 생산적인 것들에서 몇 걸음쯤은 물러나 있는 모양새니 말이다. 지나치게 의미를 구하지 않는 삶, 그저 너 스스로가 고유한 삶, 그런 삶을 살아주길 아이에게 바란다.
* 월간 에세이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이 길어 에세이에는 조금 줄여서 수정을 거친 뒤 실렸습니다. 음... 편집자분께서 제목도 바꿔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