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추억을 남기는 일은 프레임 밖에서나 가능한 일 같다. 추억은 역시 남기는 자의 몫. 추억 속의 너는 시큰둥하거나 감흥 없을지도. 추억을 기록하며 사는 어미들의 사유 단위는 딱 너에서 너까지. 그 밖의 일들은 백치가 되어간다.
엄마가 되고 나서 이런 메모를 남겼다.
얼마 전 검진이 있어 병원에서 시력검사를 하다가 문득 저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는 어느덧 무럭무럭 커가는데도 예전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 역시 어미들의 사유 단위는 딱 너에서 너까지, 일까.
평소 아이가 많이 말라서 등을 쓰다듬으면 뼈가 툭툭 잡힐 때가 있다. 6학년인데도 또래 친구들보다 마르고 왜소한 몸이지만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이 아이의 성질머리 덕분에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여도 강단 있고 모든 운동을 섭렵할 정도로 뛰어나기도 한다. 절대 지지 않으려는 승부사적인 기질이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들을 볼 때면 나의 헐거운 육체가 오히려 민망해질 때가 있다.
최근에 아이가 엄마 나 등에 뭐가 튀어나왔어, 한다. 대수롭지 않게 뭔데, 하고 봤는데 척추 중간 부분에 아이 말대로 뭔가 불쑥 솟아 있었다. 아주 딱딱하지도 아주 말랑하지도 않은 그것 말이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했다. 자신의 몸에 그 어떤 세균도, 어떤 상처도 호락호락하게 내주질 않고 스스로 발견하는 놀라운 녀석이다. 탈장을 발견하고 수술을 했을 때도, 샤워하다가 나에게 말했더랬다. 엄마 여기가 불룩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또다시 나와,라고 말이다. 한 번도 탈장을 본 적이 없는 나였는데도 보는 순간 저건 탈장이구나 깨달아졌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런 적도 있었다. 5살 즈음 기침이 심해 감기약을 먹고 처방받은 기관지 확장 패치를 등에 붙여줬다. 아이가 좀 놀다가 근심 어린 투로 말했다. 엄마 안 그랬는데 심장이 빨리 뛰어. 어릴 때부터 말이 빨랐던 아이는 자기표현이 정확했다. 바로 병원에 전화로 문의드렸더니 기관지 확장 패치의 부작용이라고 한다. 바로 떼라고 하더라. 아이는 패치뿐 아니라 좀 더 커서는 어떤 종류의 기관지 확장제는 아직 먹질 못한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미 우리 아이의 상태를 잘 아는 단골 병원에서는 그 약을 빼고 다른 것으로 처방해 주신다.
어렸을 적 한 번은 아이가 친구들과 놀다가 탁자 밑이나 벽에 붙어 앉아 뭔가 골똘한 표정을 짓곤 했다. 또다시 놀다가도 주저앉아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 이가 아픈 거 같아, 하고 말했다. 아니야, 충치 치료도 했는데 무슨 소리야, 했다. 나는 임파선이나 구내염쯤으로 생각했다. 그걸 아이가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의 한쪽 얼굴이 눈부터 턱까지 큰일이다 쉽을 정도로 두껍게 부어올라 있었다. 무지한 어미는 들고뛰었다. 동네 다니던 치과를 갔더니 자기네 소관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소아과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치과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며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동네에 제법 큰 종합병원에 갔더니 여기서는 안될 것 같으니 더 큰 종합병원의 치과로 가라고 했다. 대교를 건너 옆동네로 갔다. 생전 처음 들어봤던 구강악 외과에서 아이는 몸이 묶인 채 치과 치료를 받았다. 유독 작은 유치 사이로 염증이 타고 들어간 것 같다고 하셨다. 이게 유전적인 요인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유치가 여러 개 있다!!(문제는 전혀 귀엽지 않다는 것!) 그걸 아이가 닮은 모양이다. 이가 유독 작고 약한 유치들이 자꾸 마모가 되어 거의 잇몸 근처까지 닿아 있어서 염증이 들어가기에 좋은 구조인 것이다. 아이는 묶인 채 잇몸을 찢고 그 사이로 의료용 튜브를 쑤셔 넣고 고름을 뺐다. 그 날 잇몸 사이의 튜브는 시간이 지나도 잘 안 잊혀졌다.
대표적인 몇 개만 읊조려 봤는데 그만큼 아이는 자기 자신이 굉장히 소중하고 늘 무슨 병이라도 마치 뭔가를 아는 양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물어보고 암은 아닌지, 큰 병은 아닌지, 수술은 꼭 해야만 하는지 등등을 어렸을 적부터 지겹도록 주도면밀하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 있을 때는 맥락총 낭종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물혹이 머리에 있었고 태어나서 바로 하는 검사에서 갈락토스 증후군이라는 소견을 보였던 우리 첫째. 그리고 젖을 먹이다 발견한 선천성 이루공. 이것은 귓바퀴가 시작되는 부분에 선천적으로 작은 구멍이 생긴 걸 말한다. 아이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첫째에게 남들보다 더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시려고 했나 보다, 하고 말이다. 너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될 거야, 하고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도 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드는 생각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 더 겸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은근히 고집 세고 티 안 나게 유별났던 나였는데, 첫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나는 저절로 겸손해졌다. 아이의 건강 앞에서, 아이의 기질 앞에서, 아이의 재능 앞에서, 아이의 모든 것 앞에서 말이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너무 감사하다.
이번엔 혹이다. 나는 뼈가 튀어나온 거라 여겼다. 워낙 마르기도 하고 자세도 좋질 않다. 매일 쪼그려 앉아 집중해서 장시간 뭔가를 만들거나 책을 읽는 일이 일상인데, 요즘엔 총을 만드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총기 백과사전과 최신 군용 총기 사전을 괜히 사줬나 보다, 레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괜히 깔아줬나 보다 했다. 집중하다 보면 아이는 몸을 더 움츠린다. 별거 아닐 거라고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면 정형외과를 가보자 했다.
그러다 최근에 정형외과에 들렸다. 코로나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아프고 아팠다. 열을 체크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해외에 다녀왔는지를 체크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만져 보시더니 지방종 같다고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지방종이라면 척추를 누르거나 사이즈가 더 커지지만 않는다면 그냥 살아도 된다고 하셨다. 자기 팔목에도 있다고 십 년 전에 발견한. 40-50분에 걸쳐 MRI를 찍었다. 아이는 처음 30분 정도까지는 미동도 않더니 그 후에는 발목을 깔짝깔짝 움직였다. 거의 끝날 즈음, 의심 소견이 보인다고 계획에도 없던 초음파를 찍어 보자고 했다. 의심, 이라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무슨 의심이냐, 왜 의심하냐, 암이냐 뭐냐 하며 울며 불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초음파를 찍으려고 들어갔는데 선생님께서 혹시 부모 중에 신경섬유종 같은 유전적인 병이 있냐고 물으셨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순간부터 우리 둘 다 심각해진 것 같다. 뼈가 조금 튀어나온 것 같아 정형외과를 찾은 것뿐이었는데 지방종도 아닌 신경섬유종이라고? '신경섬유종'과 '유전' 둘 다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말이었다. 네이버에 접속하면 보였던,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그 신경섬유종 말인 거지, 하면서. 그런데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가 깨끗하고 맑았다. 그 흔한 점이나 주근깨도 거의 없었다. 애써 뒤져 봐야 점을 발견할 정도였다. 혹이나 커피색 반점 같은 기저 증상이 전혀 없었는데 신경섬유종이라고? 가슴이 떨렸다. 검사 결과는 이틀 뒤에 나왔다. MRI 결과 신경섬유종 소견이 보인다고.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괜찮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지만 진정이 안됐다. 더 정확한 건 수술로 혹을 꺼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주말 내내 고민을 했다. 남편은 그냥 수술하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오래 얘기했고 오래 고민하다가 수술과 수술 후 치료방향까지 생각해야 하므로 제일 큰 대학병원 소아외과로 예약을 잡았다. 6개월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들이 엄마 품에 잠들어 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음소리조차 가냘팠다. 아프면서 자란다지만 얼굴에 머리에 등에 큰 혹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건 너무 가혹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오지랖처럼 연민이 달라붙었다. 아이와 애 아빠는 벌써 초주검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처음에 들었을 때보다는 많이 담담해졌다. 다른 아이들을 눈여겨볼 여유가 있을 만큼 말이다.
대학병원으로 오면 선생님이 한눈에 알아보고 이 병은 무엇이다, 어찌어찌하자, 에이 이건 별거 아니다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해 주실 줄 알았다. 가지고 간 MRI와 초음파 CD를 휙휙 간략하게 보더니 좀 드문 자리에 혹이 생긴 것 같다면서 약간 모호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그 말은 무슨 말인지 정말 모호했다. 그러면서 영상 판독을 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다음 주에 보자고 하셨다. 물론 수술은 해야 하며 조직검사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찝찝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할수록 찝찝한 채 말이다.
대학병원으로 오기 전 남편은 환우회까지 들어가며 온갖 검색을 다했다. 신경섬유종은 생각보다 여러 단계, 여러 양상을 지닌 병이었다. 검색은 하면 할수록 명쾌하게 병의 정보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단계의 심각한 병증을 마음에 키우게 했다. 남편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고 하루도 빠지지 않던 운동이 자체적으로 중단됐으며 밥도 잘 먹지 않더니 고새 3킬로가 빠졌다. 넌 왜 괜찮니, 병원 가서 울려고? 했다 남편은 내게.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닦달하던 쪽은 나였다. 걱정이 많은 쪽도 나이고. 그런데 이번엔 웬일인지 남편의 반응이 심상찮았다. 남편은 정말이지 최악의 상태까지 생각하며 이런 말까지 했다. 정말 이 병이 맞고 유전적인 거라면 얘를 우리가 끝까지 데리고 살자고. 남편의 결심은 단단했고 이 아이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기세였다.
판독 결과는 다음 주 화요일에 나온다. 수술 날짜도 다음 주에 잡을 예정이다. 기적처럼 아무 것도 아니다, 별 거 아니다, 했으면 좋겠다. 내가 쓴 이 글이 민망해질 정도로 정말 괜찮다, 했으면 좋겠다. 감당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감사로 감당할 것이라고 남편과 이야기 했다. 그렇지만 화요일까지 우리는 긴긴 시간 피가 마르는 중이다. 지금은 아이도 남편도 많이 안정되었지만. 나는 걱정되는 마음을 분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기록 따위를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헬라어로 '아파르케'라는 말은 장자(長子)라는 말인데, '자궁을 처음으로 연 자'라는 뜻이다. 첫 열매 그리고 나의 자궁을 처음으로 연 내 첫 아이가 다시 수술대에 올라간다. 그렇다. 어미들의 사유 단위는 딱 너에서 너까지. 그 밖의 일들은 백치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