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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Oct 11. 2021

당신의 암에게

  

  암만 생각해도 서른둘은 너무했지요.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뛰어갔다던 당신인데. 그만 암이 찾아왔네요. 이유도 모른 채.


  모든 질병에 이유를 안다면 그건 더 이상 병은 아닐 테죠. 알 수 없으니 더 기분 나쁘고 께름칙한 것이 병이죠. 왜 생겼는지,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답답하고 참담한 건 의사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이에요. 그러면 진짜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지니까요.


  저는 전신마취, 수면마취, 부분마취 등 칼로 찢고 꺼내는 수술을 꽤 많이 했어요. 침대에 몸을 누이며 천장에 달린 몇 개의 형광등을 지나 수술실에 이르렀을 때 약에 취해 생각이 딱 끊기는 기분 나쁜 경험을 꽤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게 분절된 시간들은 나의 육체를 잊어버리고 몇 시간쯤 멈버리죠. 아픈 이들의 시간은 그렇게 자주 멈춥니다.


  때론 육체만 두고 완벽하게 사라지기도 하지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르고요. 

  건장하고 젊었던 서른둘의 당신은 작고 어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도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당신의 삶의 모양도 악성종양처럼 아무렇게나 일그러져 갔어요. 당신은 남아있는 가족에 대해, 그 가족의 슬픔에 대해 몰라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울고 쓰러져도 죽음은 오롯이 당신의 일이니까요. 죽음 이후의 일들은 모른 척하셔야 합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그런 거지요.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또 많은 것을 모르고 살지요. 암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쯤이면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은 제법 정확하고 예민하고 부지런하고 영민했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차마 알 수 없었습니다.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일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요.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일 투성인데요. 당신은 당신의 삶에 암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17일 만에 죽었습니다. 육체만 남겨놓은 채요. 17일이라는 시간에 대해 나는 꽤 오랜 시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3주가 채 안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한 달의 반을 갓 넘긴 시간이기도 합니다. 17이라는 수는 7번째 소수이기도 하고 내가 아는 이가 가장 좋아하는 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때 제가 응원했던 SK 와이번스(SSG 랜더스로 바뀌었죠)에서는 등번호 17번이 저주받은 번호라는 이야기가 있다죠. 이 번호를 달았던 선수들은 부진이나 부상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만약 내 삶이 17일 만에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했어야 할까요. 아니 17일 동안 10일 정도는 아주 멍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내가 없는데 과연 어느 시점에서 나는 기운을 내고, 어떤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요.


  그러한 생각이 들더라도 당신은 아무것도 실천할 수 없었겠죠. 당신은 곧 혼수상태가 되었으니까요. 마지막을 가장 비약적으로 마칠 수 있는.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보다 빨리 병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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