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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un 02. 2023

갈수록 시가 되는 말들

_시의 효용

_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집을 읽다 보면, 그 시의 혈관 같은 구절이 있다.

  가령 이런 것.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p.19 )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p.33)

 "걔는 늘 그렇게 혼자 차분했다

그래서 내가 걔 아픈 건 하나도 몰랐다"(p.45)

 "그때 나는 시를 읽고 미간이 뚫렸다 그때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p.46)

 "누가 울 때 그는 캄캄한 이국(異國)입니다"(p.65)


  갈수록 시가 되는 말들, 말이다.

 슬픔을 덧대는 말, 어둠을 껴입는 말, 결국 간절히 몸이 되는 말.


  그리고 시집 뒤편에 박연준 시인의 발문이 인상 깊었다. 조금 옮겨오면.


 "시집을 읽는 효용 있잖아. 그걸 알게 됐어. 바로 이런 거였어. 뱃속에 고아원을 들인 것처럼 속이 휑하고 울렁이는 기분, 그런데 벅찬 기분. 너무 슬퍼서 좋은 기분. 내 속에 차린 고아원을 돌보는 기분. 이게 시의 쓸모야. 그게 다야. 시는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거야. 시는 이렇게 쓰는 거였어. 기억이 났어."(p88)


  그렇지.

  절박함을 잘 돌보는 사람이 시인이 되는 거겠지.

  끄덕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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