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비지트’ 리뷰

그 힐링이 공포여야 하는 이유

by 이일영


‘더 비지트’는 2022년 11월 22일 현재 넷플릭스와 웨이브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중입니다.

구글 플레이, 네이버 시리즈에서 대여, 혹은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더 비지트’는 2015년도에 개봉했습니다. 감독은 M. 나이트 샤말란입니다. 식스센스로 유명한 감독이죠. 더 비지트도 공포 영화고, 페이크 다큐멘터리입니다.


주인공은 두 남매인데, 누나 베카와 동생 타일러 중 카메라 주도권이 있는 사람은 누나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집에 방문해서 겪은 일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하거든요. 엄마를 위해서요. 엄마는 졸업반 때 고등학교 임시 영어교사와 사랑에 빠져 살던 마을을 함께 떠났고, 이 일로 크게 싸운 엄마와 엄마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서로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엄마는 그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딸 베카가 보기엔 엄마가 부모님을 몹시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5년 만에 인터넷으로 연락이 닿은, 카운슬링 웹사이트를 운영한다는 조부모님이 일주일 간 아이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요구에 선뜻 응합니다. 일주일간의 방문은 엄마에게 치유와 화해의 단초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예요.


둘이서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해 처음 뵙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친근하고 다정합니다. 남매는 엄마의 어린 시절 추억이 실재하는 것을 봅니다. 엄마가 자란 마을을 찍고 주변 인물을 인터뷰해서 엄마에게 선물로 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나가죠. 베카는 최대한 이 처음 만난 가족에게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점점 다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소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밤중에 큰 소리가 나는 것? 그럴 수 있죠. 이것도 그럴 수 있는 일 같습니다. 저것도요. 잠깐만요……. 그럴 수 있는 일이 맞나?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공포 영화나 이야기를 많이 접해보신 분들은 친숙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일에 대한 예측이 어렵지도 않고요. 크게 잔인한 장면은 없고, 농담도 많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익숙한 틀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남매가 정말 귀여워요.


이 영화는 공포 영화입니다. 공포, 동의하긴 하는데 저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공포를 매개로 한 성장 영화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라고요. 농담 아니고요, 비꼬는 것도 아닙니다. 장난치는 것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어지는 내용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 전반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와 설명이 있습니다.)









베카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엄마와 조부모님 간의 유대를 다져보겠다는 꿈이죠. 시간이 흘러 엄마에게는 이제 사라진 남편 대신 새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새 부모가 생기진 않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마을을 떠나왔던 아빠는 이제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엄마의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으니 이제는 가족 간의 유대를 새롭게 느껴 볼 기회란 말이에요.


남매는 사랑하고 의지했던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세 명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좋은 관계지만 원래부터 세 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빠는 십 년 동안 함께했던 가족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새 사랑을 만나 떠나버렸죠. 사랑을 위해 부모님을 떠난 엄마처럼요. 아이의 보호자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애들을 내팽개치고 떠난 것과 곧 성인이 되는 딸이 부모님을 떠난 것을 등치 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아빠가 떠난 후 자신의 모습과 부모님과 15년 동안 분리된 엄마의 모습을 겹쳐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남매는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서로의 인터뷰를 합니다. 둘은 아빠가 떠난 후 서로 어떤 정신적 고통을 겪는지 알고 있습니다. 타일러는 결벽증이 있습니다. 베카의 설명에 따르면 의사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 그렇게 나타나는 거라고 했답니다. 더 이상은 스포츠를 즐기게 되지 않게 만든 일도 있죠. 8살이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승리는 코앞이었고, 중요한 수비 역할을 맡은 타일러가 움직여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심리적으로는 아빠가 가버린 것과 풋볼 경기에서 있었던 일을 연관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카는 거울을 보지 않습니다. 동생 타일러는 그걸 잘 알고 있죠. 거울을 봐야 할 때도 보지 않습니다. 타일러는 그게 베카가 자신을 하찮게 생각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베카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합니다.


위 내용은 아빠가 떠난 후 두 아이가 겪는 심리적 고통을 영화 안에서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들도 있어요. 타일러는 랩을 합니다. 랩 네임은 T 다이아몬드 스타일러스. 랩 내용을 들어보면 어째 다 비슷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지만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여자들은 나에게 껌뻑 죽고 정신을 못 차린다. 솔직히 사실 같지는 않습니다. 동생과 다르게 베카는 이성과 지성에 상당히 집착합니다. 영화 내내 지능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남동생과 싸울 때 말고도 내내 지성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되고 싶은 동물은 돌고래인데, 직관적이고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서 그렇대요.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진 이유는 친절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면서요. 다큐멘터리에는 아빠 영상을 넣지 않을 생각인데 그건 용서의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아주 이성적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보기엔 감정을 이성과 지성 안으로 숨기는 모습처럼 보여요.


더 비지트는 이 두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상실로 입은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조부모님은 사실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가짜 조부모님은 두 주인공을 공격합니다. 이 극적인 싸움은 각자의 취약점을 직접적으로 마주 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베카는 자신을 공격하는 할머니를 깨진 거울로 무찌릅니다. 할아버지는 결벽증이 있는 타일러에게 분변을 바르고 얼어붙게 만듭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타일러는 뛰어나갑니다. 완벽한 태클!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람이 가짜였다는 사실은 공포 영화로서의 전개에서도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극복 이야기로 보았을 때도 상징적입니다. 아빠가 버리고 떠나갔다는 슬픔에 자신과 주변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거든요. 정말로 타일러가 풋볼 경기에서 태클을 하지 않아서 아빠가 떠났나요? 아니요! 베카가 정말로 하찮은 소녀인가요? 정말로 아니요! 우리가 왜곡해서 인지하는 세상은 가짜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영화 속에 나온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처럼요.


애초에 베카가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유도 잘못 알고 있던 사실 때문이었어요. 영화 말미에 엄마가 말합니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자신을 용서하셨다고요.


가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상징하는 것이 왜곡된 인식이라면 진짜 조부모님은 무엇인가요? 왜곡되지 않은 현실? 제 생각에 영화 내적 논리로는 둘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짜 조부모님의 대립쌍으로서의 미약한 존재감만 있을 뿐이죠. 왜곡된 인지상이 죽여버리고 대신 자리를 차지할 설정 안의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둘이 마침내 상처를 깨트리고 맞이할 현실은 엄마와 떠나간 아빠가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베카와 타일러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공간과 기회를 만드는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카운슬링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병원에서 상담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은 일종의 상담실이죠. 의미심장하죠?


좀 이상하긴 해요. 진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살해되어서 돌아가셨지만 누구도 죽은 이를 위해 아주 슬퍼하며 울거나 상실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가 우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사랑하는 이를 용서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슬픔처럼 보여요. 영화의 주제 의식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직접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프다’ 는 말은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애가 할머니 할아버지 집인 줄 알고 갔는데 사실 살인자 부부가 있고 지하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시체가 있는 집에서 며칠 동안 살았으며 살해당할 뻔했던 경험이 있으면 솔직히 이렇게 마음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워지고 그렇겠어요? 그럴 가능성은 아주 적습니다. 안 그래요? 심리 치료받아야 해요, 현실이면. 저라면 아마 밤마다 울면서 깼을 거예요.


베카가 만든 다큐멘터리에는 아빠의 얼굴이 나옵니다. 타일러는 진실된 랩을 하고 베카는 이제 거울을 볼 수 있네요.


저는 두 주인공의 성장 영화가 공포라는 장르로 만들어져서 좋았어요.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반드시 공포로 만들어야 했던 이야기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싸우고 이겨내고 회복하는 일이 따뜻하고 포근할 수만은 없습니다. 어떨 때는 아주 공포스럽죠. 내가 무서워하는 것을 떨치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요.



+

글의 흐름 상 중간에 쓰진 못했지만 이 영화는 헨젤과 그레텔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남매가 모르는 노인의 집에 방문한다는 점에서요. 또 할머니가 베카에게 여러 번 오븐 안에 들어가길 요구하는 장면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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