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에 파병 결정이 된 장병들은 강원도 모 부대에 집결하여 주어진 시간의 집중 훈련을 받아야 한다. 엄청난 고난도 프로그램들이 매일 짜인 일과표 대로 조교의 엄격한 지도아래 철저한 교육이 진행된다. 나에겐 처음 경험하는 유격훈련이 새로 익숙해지기까지 무척 어려웠다. 유격훈련은 과정이 바뀌고 이동할 때도 구보로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는 게 특징이다. 오전 일과가 종료되기까지 계속된다. 제일 힘이 들었던 코스는 외줄을 타고 올라가는 과정으로 노력을 해도 요령 탓인지 잘 안 된다. 안 되면 팔 굽혀펴기로 대신하고 옆으로 옮겨서 다른 코스에 도전하여 성공하면 가벼운 마음을 갖고 다음 과정에 도전한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부산항 제3 부두에 환송 행사를 위한 준비가 이미 마무리된 상황이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와 같은 분위기다. 만국기가 임무를 교대할 장병들이 타고 갈 배와 부두에 설치된 여러 건축물 사이사이와 연결되어 있어 작은 파도와 함께 가볍게 춤을 추고 있다. 보통은 할 수 있으면 전송 나온 가족들이 있는 장병들 위주로 운동장에 대표로 도열하게 된다. 나의 집은 워낙 멀리 있기에 참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부두에 서서 행사 진행을 머릿속에 담게 되었다. 순서에 따라 환송행사가 마친 후에 가족들은 "여보. 당신."을 부르며 잠시 헤어짐을 달래며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아빠. 오빠. 잘 다녀오세요." 하며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젊은 연인들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배로 갔다 꼭 배로 와야 해." 하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의 의미를 나는 들어 알고 있었다. 아무 사고 없이 임무를 마쳐야 배로 귀국할 수 있고 중간에 사고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혹시 전사자가 되면 비행기로 귀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은 모두 배로 귀국하기를 바라면서 배에 오르게 된다. 나도 배에 오르면서 행사 때 받은 꽃다발을 다시 돌려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5박 6일 동안 내가 머무를 정해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3층 B43호실. 더블백을 내려놓으니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고 있다. 내륙 지역에 살다 보니 배를 타는 기회가 제주도 한 번 다녀온 경험이 전부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점심식사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니 벌써 길게 늘어선 줄이 연결 지어 기다리고 있다. 식당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40분을 넘게 기다리다가 배식하는 곳에 서게 되었다. 메뉴보다 배식하는 얼굴이 먼저 보인다. 흑인 병사들이다. 식단도 빵, 계란 프라이, 콩, 과일, 커피 등으로 미국식이다. 그러니까 미군병사들이 먹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거부감 없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갑판 위에서 훈련받을 때 사귄 얼굴들을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우니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잠시 후 부---웅, 부---웅. 뱃고동이 울린다. 아직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갑판 위의 떠나는 이들은 한쪽으로 길게 줄을 잇는다. 다시 한번 길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맞춰 육중한 배는 서서히 움직인다.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은 "어머니--- 이."를 외친다. 하지만 많은 얼굴들 가운데 콕 집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애인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도 허공을 가르는 메아리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이 배는 벌써 한참을 파도에 밀려왔으니 말이다. 아니 이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멀어졌으니. 그래도 아쉬운 듯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마음만은 서로 잊지 않기를. 방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가 가까워진다.
쉬려고 누워있을 때 몇 분이 흘렀을까? 뱃속으로부터 목구멍 쪽으로 밀려오는 느낌이다. 처음 갖는 기분으로 토할 것만 같다. 아, 이게 멀미구나. 급히 화장실로 달렸다. 먹었던 점심식사를 소화도 되기 전에 다 토해내고 있다. 커피까지 나오는가 보다. 너무 힘들다. 금방 다리가 풀린다. 이제 시작인데 6일 동안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잠이라도 자면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겨우 방에 들어왔다. 그러나 쉽게 잠도 오지 않는다. 얄궂게 저녁식사시간 알림 방송이 흐른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먹지 않고 거르기로 했다. 무거운 몸을 끌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깜깜한 어둔 밤바다가 있다. 엔진 소리에 맞춰 파도가 춤을 추고 하늘의 별들은 모여 합창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장이 펼쳐진다. 이 밤은 다른 생각일랑 모두 주머니에 담아 무거운 돌에 묶어 깊고 푸르른 바다에 가둬버리고 밤의 지휘자를 따라 그냥 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