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이웃과 함께)
앞만 바라보고 달리다 보니 벌써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옛날 같으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이웃 어른들을 초청하여 잔치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쑥스럽고 어울리지 않는다.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일찍부터 그런 잔치 같은 행사는 접기로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있음에 의미를 돌아보면 감사한 마음이다. 며칠 전 장례식이 있어 승화원을 방문하였을 때 추모의 집에도 들렸다. 잠든 이들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나이를 메모한 내용을 보았다. 장수한 분들도 있지만 40대, 50대에 삶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10대의 잘 생기고, 예쁜 아들 딸들의 얼굴도 보인다.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새겨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이웃과 함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아내도 기쁜 마음으로 동의해 주었다. 나는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하여 면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나의 뜻을 전했다.
"제가 60번째 생일 기념으로 쌀 20kg 100포대를 어려운 분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농협에 들려 쌀값을 지불하고 부탁하겠습니다. 선정하여 전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면장님이 대답을 듣고 자치센터에서 나왔다.
생일 새벽 이발소가 있는 목욕탕에 갔다. 속옷까지 벗고 의자에 앉은 나는 가위를 든 이발사에게
"신병훈련소에 입소하는 군인처럼 이발기로 밀어주십시오." 라며 부탁을 하니
"뭐라고요!"
"이발기로 밀어주세요." 두 번 세 번 따지듯 반문하는 이발사다.
"정말입니까. 입산하려고 그러십니까. 스님이 되시려고?"
"아니오."
"그럼 데모라도 할 일이 있는가 보죠."
"아닙니다." 겨우 설득하여 입대하는 장병처럼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밀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내가 봐도 웃음이 나온다. 나름대로 지나온 60년의 시간을 접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역시 가장 놀란 사람은 아내였고 이웃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목회자로 예배를 이끌어야 할 일요일이 되었다. 시간에 맞춰 모자를 쓰고 교우들 앞에 서니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는 모자를 벗었다. 갑자기 머리만 스님이 된 모습을 보고 엷은 미소를 보이기도 하고 활짝 웃는 이도 있다.
"여러분 제가 60년 살아온 지난날을 감사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삭발을 했습니다."
건강한 삶으로 달려온 지난날들을 반추하며 나름대로 이유를 정리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삶의 연장선으로 더욱 보람찬 발걸음으로 걷기를 다짐하는 마음이다.
건강하게 살아온 이유가 있다면 규칙적인 시간표가 약을 멀리한 제일의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잠이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변동이 없다. 식사 시간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진 대로 한다. 독서 시간도 정해져 있음은 물론이다. 일상생활 전체가 균형 있게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모임의 약속시간은 반드시 지킨다. 시작 시간 5분 전에는 도착해서 기다린다.
운동 효과이다. 과격한 운동은 아니다. 매일 새벽 가볍게 조깅을 40년 넘게 꾸준히 하였다. 그러다 보니 걷기는 쉬운 편이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수락산 아차산 우면산 사당역 관악산 가양역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둘레길. 8구간으로 나눠진 157km를 9일 동안 혼자 완주하기도 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인내력을 쌓는 땀이 되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북쪽으로는 대청봉 남쪽으로는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고 내리며 아름다운 조국의 넓은 산과 포근한 숲의 숨결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소식(少食)은 나의 식생활 습관으로 몸에 밴 지 오래다. 군대 시절 본의 아니게 과식을 한 일이 있으나 옛 어른들께서 '더 먹고 싶을 때 수저를 놓으라'라고 하신 조언을 늘 기억하면서 과식하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 그러니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배가 부르기까지 먹지는 않는다. 뷔페에 가면 손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적게 먹더라도 즐겁게 먹는다. 나의 식탁에는 소식(笑食)이란 글씨가 보인다. 소화제는 이름도 모른다.
또 하나는 유전적 요인이다. 아버지는 비교적 건강하셨고 어머니는 92세, 돌아가시는 날도 병원을 찾지 않을 만큼 건강이 좋았다. 시력도 좋아 돋보기 없이 책을 읽으실 수 있었으니 내가 아직 안경을 쓰지 않는 것과 오늘의 건강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전이라 생각한다.
육체적인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이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는다. 낙천적인 생각을 품고 사랑의 눈을 열고 사는 게 건강한 삶이 아닌가?
여기까지 왔으니 보다 진실하게 살아야겠다.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니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돌아보는 여유를 갖자.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달려가자. 이제부터 덤으로 사는 삶이라면 너무 성급한 생각이라고 여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