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지내던 어느 해 5월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문득 선생님 한 분이 생각났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6학년이 시작되는 첫 시간이었다. 바뀐 교실에서 새로 오시는 선생님을 설렘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앞문이 열렸다. 교장선생님의 뒤를 따라오는 선생님은 군대식으로 짧은 스포츠 형 머리에 절도 있고 매우 엄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짤막한 소개가 있었고 J 선생님의 인사가 이어진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함께 갑시다.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도록 합시다."
우리는 힘찬 박수로 환영하였다. 간단하지만 결의에 찬 다짐이었다. 중학교를 시험을 통해 입학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열정이 대단한 분이셨다.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도록 합시다. 부임인사에서 다짐한 대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가르쳐 주셨다. 그 시절에는 과외가 없었다. 아니 사교육이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싶다. 대신 방과 후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고 겨울 방학 때는 입시를 앞두고 모두 과외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흡한 부분은 선생님이 직접 프린트(복사)하는 수고를 하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 반 전원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엄하고 무서운 인상이었으나 오히려 굉장히 다정하고 신사적인 분이시다. 한마디로 외유내강 형이시다. 어떤 분은 화부터 내고 회초리를 든다면 선생님은 잘못한 일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한 이해가 있은 다음 허리를 15도 굽혀 인사하는 자세를 를 취하게 하고 엉덩이를 때려주신다. 체벌이라기보다 교육이다. 겨울 방학 때 일이다.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공부하기보다는 장난하며 떠들고 있었다. 마침 들어오시던 선생님이 우리를 보고 무척 속상해하셨다. 선생님은 전체 웃옷을 벗고 운동장에 모이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리고는 운동장 다섯 바퀴를 뛰라는 벌을 내렸다. 어찌나 추었던지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 번은 토요일에 나를 부르신다.
"상수야 오늘 끝나고 우리 집에 다녀가."
"네. 알겠습니다."
왜 그러시지? 선생님 사택이 학교에서 가깝기 때문에 짧은 시간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먼저 말씀하시겠지.
선생님과 마주한 겸상이 조금은 머쓱했다. 사모님과 셋뿐이니 더욱 그러했다. 소고기 국이다. 그런데 다른 야채는 없고 내가 싫어하는 대파만 국물에 들어있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어쩌다 먹을 수 있는 귀한 고기 국인데 사양할 수가 없었다.
"상수!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문제야."
"선생님은 어떻게 저를 아세요. 선생님 저는 10남매입니다. 순서로 일곱 번째인데요."
"그래서 경제 문제인가."
"아닙니다. 두 누나들은 중학교에 못 가는데 저는 가야 하니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상수가 걱정할 일이 아냐 형님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잖아."
선생님은 정직을 무척 강조하셨다. 누구 앞에서나 떳떳하고 자신 있게 보이는 것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직해야 함을 거듭 말씀하셨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다짐을 했다. 먼저 연락처를 알기 위해 같은 지역에서 교직에 근무 중인 둘째 형님에게 부탁을 했다. 곧바로 회답이 왔다. 졸업하던 해 여름방학에 반창회로 한 번 모임을 가진 후 다시 모일 기회가 없었다. 52년 만의 전화인데 선생님께서 기억하실까 걱정이 앞선다.
타르---응, 타르---응.
"네." 잠시 호흡이 멎는 듯하다. 반가운 선생님 목소리 그대로이시다.
"선생님, 저, 상수, 이상수입니다."
"그래. 이상수. 오래 달리기 하던... 반갑네 잘 지냈지?" 기억하고 계시는 너무나 고마웠다.
"네. 선생님. 이번 스승의 날에 외출 계획이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다른 계획은 없어. 여기까지 오려면 250여 km는 될 텐데 안전하게 오도록."
아내에게 떡을 하도록 부탁을 했다. 수삼 2채를 구입하고 봉투도 준비했다. 15일 아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에게 내비게이션 역할을 맡겼다. 운전자인 나를 졸지 않게 하려는 처방이다. 고속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얕은 산들은 푸르고 푸른 한 폭의 그림책들이다. 나뭇잎들의 봄을 향한 꿈틀거림은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계절임을 보게 한다. 선생님 주소가 적힌 대로 따라가니 아주 낯익은 동네가 아닌가. 옛날에 난처한 쇠고기 국으로 점심식사하던 그 일이 드라마의 화면처럼 멈춰 있는 듯하다. 차를 세우고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숙여야 하는 작은 집 그대로이다. 52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선생님의 선비 정신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이다. 바로 옆에 25층 아파트가 있으니 더 작아 보여도 무리는 아니다.
"선생님! 상수 왔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제 집사람입니다."
아내와 함께 큰 절로 인사하며 준비한 선물도 드렸다. "어서 오게. 반갑네. 멀리 오느라 고생했지. 그래 상수는 하는 일이 무엇인가? "
"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사모님은요?"
"어허 성직자시네. 감사해. 아내는 아이들 집에 갔어."
"그럼 오늘은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주십시오. 선생님 가르침 늘 새기며 기억하겠습니다. 문 앞에 서 계시는 선생님에게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