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만 지내다가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울타리는 물론 칙칙하고 무거운 담벼락도 없이 형님, 동생 하며 이웃사촌처럼 지내던 생활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바뀐 분위기가 몸에 맞지 않는 기성복을 입은 기분이다. 위층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아래층은 어떤 분일까? 궁금하다. 마주한 앞집도 외출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문두드리가 조심스럽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어색하기만 하다.
"여보 우리가 이사를 왔으니 떡을 해서 같은 라인만이라도 나눕시다." 아내의 제안이다.
"좋은 생각이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소통이 되겠소." 아내는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떡방아 집을 찾아가 팥을 넣은 떡으로 주문했다.
"떡을 어디에 쓰려고요?" 떡방아 집 아저씨가 반기며 묻는다.
"네. 이사를 와서 이웃과 인사를 나누려 합니다."
"뭐라고요. 요즘 그렇게 하지 않는데요." 그러면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메모하라고 한다. 아내는 지구 아파트 201동 1004호. 주소를 읽던 아저씨는 201동 천사댁이 오셨군요 한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1004호입니다."
"네. 그러니까 천사댁이라는 말씀이오. 요즘 누가 떡을 합니까?" 아내는 쑥스러운 얼굴로 날짜에 맞춰 배달하겠다는 약속을 들은 다음 가게를 나왔다.
똑똑똑.
"누구시죠?"
"904호인데요." 문을 여니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다.
"네, 반갑습니다. 이번에 이사 온 사람입니다." 서먹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우리 집 천장에서 물이 새거든요. 싱크대를 확인해 보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전에 살던 중학교 부부 교사 가족이 수리를 할 때 싱크대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인하니 연결 호스에 문제가 생겨 물이 새고 아래층 주방 천장을 적셔 얼룩이 지고 말았다. 즉시 수도 진입로를 차 단하고 조치를 취했다. 경험이 없이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당황했다. 여러 사람에게 전화로 문의하니 피해자 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결론이다.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은 거실 전체 천장을 도배를 해야 한다는 문제였다. 나는 아내에게 이웃끼리 얼굴 붉히지 않도록 비용을 지 불하기로 했다. 금전적으로 작은 손해를 보았으나 서로 다툼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딩동.
"떡을 갖고 왔습니다."
"아저씨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떡값은 여기 봉투애 있습니다. 아내와 나는 준비한 위생 도시락에 떡을 담았다. 앞집의 문을 눌렀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문이 열린다. 아내와 같이 인사를 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부부가 함께 얼굴을 보인다. 외동아들이 고등학교 교사로 외지에 있어 두 분만 지내고 있다. 떡을 전하고 미소로 문을 닫는다. 904호를 노크했다. 지난번 도배 일로 조금은 머쓱했지만 아내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한다. 오셨어요! 천사 댁 아줌마 하는 904호의 말에 아내는 1004라 하지 말고 그냥 아줌마 하면 좋겠네요 하며 떡을 건넨다. 이 집의 아들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이며 지금은 반찬을 나눠 먹는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위로 20층, 아래로는 1층까지 모든 세대 방문을 마쳤다. 경비실 아저씨 두 분과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도 떡을 전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다. 가슴에 이름표가 있는 경비실 아저씨 두 분의 이름만 연락처에 저장했을 뿐 다른 이름은 잊고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몇 호 댁으로 소통이 되니 말이다. 너의 이름, 나의 이름일랑 모두 모아 주머니에 담아 아파트 지하 창고에 걸어두아야겠다. 다시 찾을 때 열어 확인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