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의 가출

2023년 어느 날 미용실에서 머리 파마를 마치고 오는 아내가 비닐봉지에 구피 다섯 마리를 담아 들고 왔다. 마트에 가서 작은 어항과 구피 먹이를 사 왔다. 구피는 서인도 제도가 원산지인 열대어로  분포지역은 중앙아메리카, 남미 북부 트리니다드, 베네수엘라, 브라질, 콜롬비아, 기아나 등이다. 다섯 마리 중에서 세 마리 몸이 약간 큰 쪽이 암컷으로 약 6cm이고 두 마리 수컷은 약 3cm다. 먹이는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씩 주면 되고 어항의 물은 1 주일에 한 번 갈아주면 된다. 

5월 15일. 어항을 살펴보니 새끼 3 마리가 작은 몸짓으로 움직인다. 4월 22일 우리 집에 올 때에 아마 새끼를 품고 왔나 보다. 처음 새끼를 날 때는 10 마리 내지 20 마리 정도를 낳는다고 한다. 3 마리를 따로 분리해 놓았다. 구피는 공격성이 강해서 분리하지 않으면 어린 새끼들을 집어삼킨다는 것이다. 아무리 민물고기라고 하지만 그렇게 공격력을 갖고 자기가 낳은 새끼를 돌아서서 입으로 물어버리니 안타까운 일이다. 6월 17일 새벽 눈을 뜨고 불을 밝히다. 거실에 있는 어항을 살피니 검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다. 밤 사이 다른 암컷이 새끼를 낳았다. 뜰채로 건져 다른 세 마리가 있는 어항에 옮겨 놓으니 가족이 20 마리가 늘었다. 

어느 날인가 암컷 한 마리가 움직임이 없이 어항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게 보인다. 가까이 에서 어항을 

가볍게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자세히 살피니 이미 호흡이 멎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구피의 수명은 2-3년 정도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 더 오래 사는 것도 더러 있다고 한다. 아내가 알지 못하게 죽은 구피를 건져 움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았다. 

비가 많은 여름이 가고 열매의 가을도 지나 12월로 접어들었다. 거실의 어항에는 구피들이 자유롭게 해엄치고 있었다. 6월에 태어난 구피는 이미 다 자라 새끼들을 품게 되었다. 곧 새끼를 낳을 것 같아서 수컷 한 마리와 짝을 맞춰 접시 형의 유리그릇에 따로 떼어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새끼가 17 마리다. 새끼들을 다른 어항에 두고 새끼를 낳은 것은 다시 자란 구피들 어항으로 보냈다. 그런 다음 아랫배가 부르고 검은 주머니를 무겁게 달고 다니는 암컷을 골라 새끼 날 그릇으로 옮겨 놓는다. 어느 것은 2일 혹은 3일이 지나 새끼를 낳는다. 앞에서 하던 방법대로 새끼들이 모인 어항으로 새끼는 보내고 어미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몇 차례 반복되 하니 이미 새끼가 50 여마리가 됐다. 다시 거실 TV 장식장 선반 위에 놓인 접시 형의 유리그릇에 수컷과 짝을 이룬 구피가 새끼 낳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눈이 열리고 불이 밝혀졌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새끼를 낳을 줄 알았던 구피가 접시 형의 유리그릇 밖인 TV 장식장 위에 엎드린 채 빳빳하게 말라 있는 게 아닌가? 아차! 내 잘못이었구나 생각하면서도 멸치가 연상되기까지 했다. '물이 있는 곳이 제 집인 것을 모르고 가출을 하다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다인가?

2024년.

1월에 이어 2월에 이르러 계속 새끼를 낳아 100 여 마리의 대가족이 되다. 다 자란 구피들의 방이 하나, 새끼들의 공간 하나, 긴 유리컵 2 개에 새끼를 품은 것과 수컷 한 쌍씩 방을 정했다. 3월 9일 봄소식과 함께 아내가 다니는 미용실에 다 자란 구피 10 마리와 새끼 35 마리를 보내다. 1년 전 다섯 마리를 보내 준 갚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