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의 여정

단식을 시작하는 날

1976년 3월 1일. 40일을 금식하기로 계획을 세운 지 오래되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여행용 가방에 갈아입을 속 옷과 내복을 챙겨 넣었다. 오직 한 권의 책 찬송이 묶여 있는 바이블을 담았다. 곧 출발하는 시간인데 전화가 부른다. 

  "천동 교우의 생일입니다. 아침 식사 준비를 했으니 지금 오시지요"   

  "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큰길을 따라 걷는다. 국도지만 자갈이 깔린 비포장 도로다. 좌측통행으로 안전하게 2km를 걸어서 가야 한다. 어쩌다 자동차 한 대 지나가면 흙먼지가 구름이 되었다가 내려앉는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축하하고 박수로 축복하다. 객지에 나가 살고 있는 가족들도 모였다, 당연한 일이다. 시골에서 힘들게 땀을 흘리며 농사 일로 수고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어제 하루 음식을 준비하려고 정성을 다했다. 여러 가지 새로운 반찬이 식탁을 채우고 있음이다. 함께 음식을 먹는 초대받은 이웃들도 한 마디씩 칭찬의 말을 보탠다.

  

  "목사님, 오늘부터 급식하기로 했죠?                                                                                         

  "네,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40일 단식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물만 마시고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흘 동안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고 밥을 10일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던데요."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을 각오로 가는 겁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논산 버스터미널까지 나왔다. 다시 익산시 여산면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다. 육군 하사관교육대가 위치한 곳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처음 길이다. 가도처가 있다는 용화산을 향해 걷는다. 해발 321m라는 표시와 함께 약 3km의 거리 표지판이 반겨준다. 가파른 언덕길이라 꽤나 힘이  든다. 비교적 함한 길이기도  하나 점심식사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제  시작인데 배가 고프면 어찌할 셈인가? 목적지에 토착하니 오후 2시 30분 경이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옹기종기 둘러앉은 초가집들이 평화롭게만 보이는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과 같다. 

 기도원을 이끄는 여자 원장에게 인사를 드렸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초창기라서 건물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오늘 저녁은 흙바닥이 깔린 비닐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는 친절한 설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장 숙소, 여자 직원 숙소에 작은 방 하나와 작은 모임 장소가 전부이다. 작은 방에는 먼저 온 사람이 머물러 있기에 나는 흙바닥에서 첫날밤을 보내야 한다. 

눈을 감고 자려고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우선 추워서 견디기가 힘들다. 3월이라지만 이곳은 산이다. 찬 외부 공기와 땅  속에서 밀어 올리는 차가움이 이불을 덮어도 뜬 눈으로 지새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