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수 Jun 18. 2024

외로운 첫 번째 주말

1976년 3월 6일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려고 씨름한다. 눈을 뜨면 입 안이 까슬까슬하고 씁쓸하다. 표현하기 어려운 괴로움이 따른다. 독한 마음으로 달래며 웃음 진 얼굴로 하루를 연다. 금식 여섯째 날이다. 배고픔과 먹고 싶은 욕망은 이제는 극복이 됐다. 보다 더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따로 있다.  넓다 느껴지는 사각형 방을 혼자 지키는 일이다.  낮에는 짜인 시간표를 따라 움직여도 문뜩문뜩 떠오르는 얼글들이 커다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불교에도 출가 스님들의 수행 방법 중에 음력 4월 15일-7월 15일(하안거), 10월 15일-1월 15일(동안거)까지 정해진 장소에 모여 공부와 수행에 전념하는 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오르는 그리움과 혼자 씨름하는 구도자의 길을 이해할 수 있으면 40일을 넘어 그 이상도 버틸 수 있으리라.

 

창문에 햇볕이 춤을 추며 흐느적 거린다. 오늘은 토요일. 이곳 산에서 맞는 첫 주말이다. 산 아래에 있었더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일을 위한 가장 분주한 날이다. 앞을 바라보며 달려온 7년의 시간 속에 주말 이틀이 갖는 의미는 매우 소중하다. 한 주간 활동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만남, 교제, 나눔 등으로 채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걸어서라도 그 속으로 가고 싶지만 서로 약속한 날이 될 때까지는 기다림도 또 하나의 훈련이라 여기고 참는다. 처음으로 이 틀을 깨고 벗어나 여유롭게 토요일을 명상의 은하수에서 도약을 위한 파도를 헤치는 중이 아닌가.  


짧은 해는 서쪽 산등성이를 넘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더니 잠자리로 굴러간다.


3월 7일

땡, 땡, 땡그랑!

내려다 보이는 산 아래 마을 교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 위를 향해 메아리친다. 성경을 읽고 있던 내 눈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뭉클해진 탓인가 보다. 공동체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견딜 수 없는 눈물이다. 눈물 자국 울 지우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면도를 하고 머리에는 기름도 발라 던정하게 했다. 금식한다는 표를 내지 않으려는 준비였다. 30여 명이 모여 예배드리는 이곳에서 아침예배 설교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나를 위해 100여 명의 응원부대가 모여있음을 생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따뜻한 교제의 장을 펼치기도 했다. 


늦은 오후 대위 계급장을 단 군목이 기도원을 찾았다. 원장의 소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슴에 새겨진 이름표를 보니 HJI이다. 육군 하사관학교에 근무 중이어서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곧 마실 차와 과일이 들어온다.  환영 분위기다. 내 자리는 어색하게 흐른다. 잠시 후 중년부부가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원장을 좋아하는 후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오늘은 따뜻한 방을 양보해야겠다. 이곳에 도착하여 첫날 머물렀던  방으로 옮겨야 한다. 흙 위에 비닐을 깔아 놓은 임시 숙소다. 지난 하룻밤의 잠자리를 몸이 기억하고 있을 텐데 걱정이다. 그럼에도 내리는 이슬을 막아줄 거림막이 있으니 감사하며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자.

                

  

작가의 이전글 빵의 문제를 넘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