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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Jul 08. 2024

추운 방에서도 꿈은 꾸다

금식 12일째 새벽이 열리는 시간이다. 지난밤도 예외 없이 괴로운 흑암이었다. 시간 시간 눈을 떠 야광 손목시계를 비쳐보는 마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냐. 그런 괴롬 속에서도 이런저런 꿈을 꾼다. 


엎드려 있는 나의 엉덩이에 누군가 주사를 네 개나 찌르는 게 아닌가? 그런대로 참고 있었는데 다시 세 개를 갖고 와 또 찌르려 하기에 두 개를 뺏어 마당에 던졌다. 또 하나는 언제 찔렀는지 엉덩이에 찔려있는 것은 주사약이 흡수되기를 기다렸다가 빼어 마당에 던졌는데 아직 주사약이 다 흡수되지 않아 피부가 부풀어 오른 것을 손으로 문지르다가 눈을 뜨니 꿈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 시간이기도 하다. 이상한 것은 마치 영양 주사를 맞은 것처럼 일어나기가 거뜬하고 세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방 안의 온도는 일정하다. 불을 땔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벌써 12일째를 견뎌왔다. 게다가 겨울은 점점 밀려나고 있으니 아무리 조금 높은 산이라도 산 너머 남쪽에서 불어오는 몸 소식을 기다리며 두 팔을 높이 들자.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그냥 방 안에 머무르고 있다.


1976년 3월 13일


밤. 

밤은 나에게는 공포의 연속이다. 아무리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세기를 반복해도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계속되니 말아다. 누워서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면 발과 무릎이 시려오고 도무지 불안하기만 하다. 억지로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면 잠깐 뿐이다. 메마른 무릎이 버틸 힘이 모자란다. 결국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밤을 새운다. 그런 날 아침이면 몸이 무겁다. 병이 나지는 않겠지만 지난밤이 괴로웠다. 


이른 아침 심부름하는 청년이 석유난로를 들고 왔다. 간 밤에 날씨가 추웠나 보다. 본부에서 난로를 보내는 관심은 지난밤 기온이 어제에 비해 내려간 까닭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고맙지만 사양했다. 편안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추위를 견디며 극복하는 것도 훈련의 또 다른 면이라고 여긴다. 그런 다음 잠시 밖으로 나갔다. 과연 추운 밤이었구나! 하는 말이  나올 만큼 마당 한쪽에 고여 있는 물들이 매끄럽게 얼었던 밤이었으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이유가 바로 추운 날씨 탓이다.


여기서 두 번째 맞이하는 토요일이다. 앞으로 몇 차례의 주말을 보내야 이 산을 내려갈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 인내하라고 가르치는 내가 느긋한 맘으로 참는 훈련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인내를 실천하는 매일의 삶이 아닌가. 배고픔, 외로움, 지루함, 추위, 불리한 환경 등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고 감사하며 지내는 훈련이다.


오후. 걷는 시간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1시가 지나고 있었다. 문을 잠그고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장모님과 <영신> 엄마가 먼 길을 찾아오셨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사위, 고생이 많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말보다 내 눈에는 눈물이 이슬방울처럼 맺히고 있다. 그렇게도 사람이 그리웠다는 증거가 된다. 재촉하며 어서 속히 내려가십시오. 하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장모님의 손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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