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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Nov 25. 2023

졸면 안 됩니다

<졸다가 생긴 일>

   얼마 전 모임이 있어 전철을 타게 되었다. 모이는 장소에서 준비한 대형 버스가 기다리는 역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출근 시간이 지났기에 자리가 여유가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편하게 앉아서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와 눈이 감기고 뜨기를 반복하다가 그만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다음 역에서 내린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곧 올 줄 알았던 열차가 오지를 않는다. 버스는 약속된 시간에  '출발'이라는 안내가 이미 있었기에 괜히 늦게 들어오는 열차 탓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승용차로 갈까 하다가 그래도 정해진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참석을 포기하였다. 나로서는 처음 있는 부끄러운 일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졸음 쉼터의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졸다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 미리 쉬었다 가면 너와 나 그리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베트남전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무더운 날씨에 전투요원, 비전투요원 가리지 않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각자 맡은 자리에서 근무하면 무장한 전투복 사이로 흐르는 땀이 온몸을 적신다. 깜깜한 밤이면 순번을 정하여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부대 요소요소에 보초를 서게 된다. 내무반 요원들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사방은 어둠이 깔리고 조용하기만 한 깊은 밤 한가운데 달빛도 외로운 길을 걷는다. 마치 시인이 되듯 감성에 잠겨도 본다. 고향의 하늘을 잡아 이끌어 보기도 하며 새 힘을 충전시킨다. 교체 병력으로 한국애서 갓 들어온 최 일병의 차례가 되어 보초를 서게 되었다. 가장 힘이 든다는 자정부터 새벽 2시인데 너무 어려운 시간이다. 잠깐 앉아야겠다 생각하고 비옷을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는 편안한 자세로 옆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두 다리를 쭈욱 펴고 앉았다. 낮에도 종일 사무실에서 근무하느라  피곤했기에 졸음이 파도처럼 몰려오는데 견딜 수가 없다. 두 눈이 감기고 떠었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당직 사관의 순시가 있을 줄이야 예측인들 했을까? 가까이 오는 장교에게 암호 보고도 하기 전에 나무 기둥에 세워 둔 총이 장교의 손에 들려졌으니 최 일병은 머리가 하얘져 어쩔 줄을 모르고 헤매게 되었다. 날이 밝자 헌병대에 불려 가서 훈계를 들었을 뿐 아니라 3일간 영창생활을 하면서 정신 무장을 하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적의 구정 공세가 가까워지는 시기에 내가 근무하는 내무반애 서도 귀국 날이 다가오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매복을 나가는 팀을 짠다. 10 명의 팀원이 정해졌다. 팀원들은 보다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한다. 어둠이 깔리면 혹시 모를 베트콩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예상하고 팀원들이 20m 정도의 선으로 활처럼 휘어진 형태로 이루어지며 그 자리에 둘씩 짝이 되어 호를 파고  호 안에 몸을 숨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전방을 살펴야 한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긴장되는지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따름이다. 새벽 4시쯤이  되었을까? 동쪽 끝 부분에 있던 정 상병이 앞에 수상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면서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다. 여차하면 던질 태세이다. 그때 옆에 있던 분대장 윤 하사가 

 

   "잠깐! 내가 가서 확인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며." 


   낮은 포복으로 이동하여 물체를 확인하니 그것은 키 작은 나무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윤 하사가 되돌아오는 순간  정 상병은 그만 깜박 졸다가 들고 있던 수류탄을 호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들은 정 상병이 바닥에 놓친 수류탄을 오른손으로 주워 밖으로 던진다는 것이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던지기 전에 들고 있던 손에서 터져버렸다. 이에 당황한 팀 매복조는 적이 나타나서 공격하는 줄로 판단하고 앞만 보고 마구 사격을 하며 갖고 있던 수류탄을 모두 터뜨렸다. 뿐만 아니라 대량 살상무기인 크레모아까지 터뜨려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이 새벽의 공포는 내무반에서도 들을 수 있어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아군끼리 마주 보고 공격을 한 셈이 된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조용해졌다 싶더니 곧바로 인근 후송 부대에서 헬리콥터가 이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사고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적과는 상관없이 아군 피해만 있었다. 사망 1명, 오른손과 왼쪽 다리를 잃은 정 상병과 부상을 당한 윤 하사 이렇게 셋은 배로 왔다가 배로 귀국하자는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몇 달 후 나는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배를 타고 귀국했다. 

   귀국한 후 나는 대구 국군 통합병원을 방문했다. 부상에서 많이 회복된 윤 하사를 반갑게 손을 잡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타이핑을 하던 지난날들을 잠시 회상하는 시간이었다. 같이 정 상병의 병실을 찾았다. 의외로 밝은 표정의 얼굴이어서 오히려 편한 마음이었다.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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