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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Dec 02. 2023

잊을 수 없는 그날

    2017년 12월 10일 이른 아침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우산을 펴고 길을 나섰다. 먼저 출발하여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의 약속 장소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고등학교 후문을 지날 때 살얼음애 신발이 미끄러지면서 쿵! 하고 엉덩이가 시멘트 바닥에 닿으며 길게 눕고 말았다. 순간의 일이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이라 바로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오른쪽 다리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심각하다는 느낌이 온다. 심한 통증은 말없이 동의를 한다. 일어나려는 몸부림도 포기하고 우산으로 비를 가리면서 오고 가는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멈추는 차 한 대도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전화기를 집에 두고 왔기에 연락할  수도  없었다. 흐르는 빗물이 속옷을 적시고 몸은 추위에 떨려 기다림의 시간이 왜 그리도 더디고 길게 느껴지는지. 절망에 빠지려 할 때 도로 옆 2층 집애서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오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 119로 연락을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다.                

   

   잠시 후 요란한 소리를 따라 구급차가 도착하였고 대원들의 수고로 차에 옮겨졌다.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하였다. 연락을 받고 대기하던 응급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침대 위에 눕게 되었다. 우선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걱정이 된다. 곧바로 X-Ray를 찍고 확인하니 오른쪽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수술을 해야겠다는 당직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고 가족이 오면 상의해서 결정하자고 했다. 응급실 침대 옆 사람의 전화를 빌려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20여 분 후 서둘러 아내가 오는데 반세기 친구 부부와 갓 초등학교교사로 발령을 받은 부부의 아들까지 함께였다. 당직 의사와 상의하니 주말과 함께 환자가 밀려 목요일이 되어야 수술 시간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하루가 급한 나로서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다른 대학병원들로 연락을 하였으나 주말이라서 사정은 비슷하였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월요일에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으로 옮겼다.

    

   정해진 입원실 창가의 침대에 누웠다. 시간이 많이 흘러 늦은 오후가 되었다. 내일 수술을 해야 하기에 침대머리에 걸린 금식이라는 표시가 더욱 허기를 느끼게 한다. 잠을 청했지만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을 열었다. 수술을 하는 날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스스로를 달랬다. 오전 11시 수술실에  들어가 처치를 하고 마취를 하여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오후 2시 30분쯤으로 수술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의사,  함께 땀을 흘린 간호사들의 수고에 감사한다.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과 함께 입원실로 돌아왔다.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에 천장만 보고 누워 있으려니 지난날 온갖 생각이 그림이  되어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157km 서울 둘레 길을 9일 동안 혼자서 완주한 기억, 새벽에 백담사를 출발하여 대청봉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등지고 설악동으로 넘던 고개. 백록담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던 일.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던 길 등을 추억의 장에 담으려니 아쉽기만 하였다. 앞으로 달리기와 등산을 삼가야 한다는 정형외과 원장의 권고가 귓가에  맴도니 나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2017년 12월 10일 이전과 이후의 갈림길로 짜인 것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전으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받아들여야만 하겠다. 더 큰 어려움이 아님을 생각하면서 극복하기로 굳게 굳게 다짐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우의 말에 의하면 고관절의 상처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다는 이들도 있다고 하면서 "아저씨는 행운아요"라는 말로 위로를 한다. 그렇다. 마음 가짐에 달려 있음이다. 두 팔이 없고 두 다리도 불편한 채 태어났으면서도 나는 행복하다 말하며 그리고 행복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를 방문하는 닉 부이치치(NICK VUIJICIC)를 다시 읽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가족들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도 넘어짐의 그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번갈아가며 곁을 지켜 준 아들과 딸의 수고가 고맙기만 하였다. 입원한 2주 동안  찾아 준 친구들의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 세 번 찾아온 우정도 있으니. 아내의 희생은 말의 기교보다 따뜻한 허그로 대신해야겠다. 그날을 가슴에 새기며 덤으로 산다는 생각과 함께 더불어 사랑하며 성실한 삶을 살기를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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