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모두 다르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들의 희망 넘치는 자신감이 좋아 보인다. 등교하는 학생들에게서 이 나라 미래를 본다. 이른 아침 병원을 찾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런가 하면 큰 도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좌판을 벌이고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도 서 있다. 찬바람이 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때 기다리던 초등학생 어린이가 "파란불이다. 건너가자." 하는 소리와 함께 바쁘게 발걸음이 움직인다. 걸어서 어린이 집에 가는 학생은 왼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오른손을 높이 들고 좌우를 살피며 걸어간다.
나는 손을 들고 걷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며 로버트 풀검(Robert Fulgjum)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파란불이 켜지면 건너기야 하는 것을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그렇다면 빨간불이 켜지면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좌우를 살피다가 눈치를 보며 뛰어 건너는 이들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니다. 어른들이 더러 무엇이 급한지 서두르고 있다. 잠시 기다리면 신호는 또 바뀐다. 횡단보도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7초에 1m당 1초가 주어져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융통성이 있어 장애인을 위한 배려로 1m에 0.8초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미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서두르다가 사고가 나면 손해가 아닌가? 2022년 1년 동안 발생한 횡단보도 사고건수가 13,222건이라는 보고다. 사망자가 432 명, 중상자는 5,909 명이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몰라서 사고가 생기면 이해가 되지만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잊었거나 실천에 옮기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복잡한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신호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아니다. 화학 공식으로 실험을 하는 곳도 아니다. 그냥 선생님만 믿고 따르면 된다. 단순하게 선생님 지시에 따르면 모든 책임은 선생님이 진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는 일도 제대로 하기를 기대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언제나 기대에 이르지 못한다. 횡단보도에는 하얀 페인트로 칠한 선이 가고 오는 방향으로 가운데를 길게 양쪽으로 갈라놓았다. 각기 진행방향 오른쪽 시작하는 바깥쪽 부분에 화살표 방향이 그려져 있다. 반대 편에도 바깥쪽 오른편 시작하는 부분에 진행방향으로 화살표가 확실히 표시되었다. 오른쪽 절반은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된다. 반대편 건너는 사람은 중앙선을 넘어 왼쪽 선을 넘지 않으면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아침부터 얼굴을 가까이하여 상대방이 어떤 제품의 화장품을 썼는지 궁금증을 안겨주는 부담을 서로 피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미 유치원에서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화살표는 왜 그려져 있는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편리한 대로 중앙을 축구선수 공을 몰고 가듯 헤집고 나가니 서로 신경이 쓰인다는 말이다. 잘 다려 입은 옷이 구겨질까. 빛이 나는 구두 콧날이 밟히지는 않을까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학생도, 어른도, 신사도 여사 소리를 듣는 리더도 그냥 무개념으로 엉켜서 건너고 있다. 내버려 두자. 피켓이라도 들고 조교 역할이라도 할까? 생각만 하다가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나 하나라도 먼저 아는 대로 실천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어찌 알겠는가?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임을...
횡단보도뿐이겠는가? 가령 유치원에서 배운 것 중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는 내용을 알고 있다면 그대로 행동하면 된다. 그럼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가 얼마나 깨끗하랴. "남을 때리지 말라" 모두 행동에 옮기면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지워질 것 아닌가?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지극히 당연한 기본 원칙이다. 누구나 이 원칙을 지키면 물건이 사라졌다거나 없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가 없다."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얼마나 좋은 내용인가? 이웃과 원한 맺을 일도 없으리라.
작은 실천을 통해 보다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행복한 웃음의 창조자가 되기를 다짐하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