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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Aug 19. 2024

육체는 약해지나 정신은 맑음

금식 22일-23일째

새롭게 월요일이 시작됐다. 너무나 조용한 날이다. 어제의 분주함 탓인가. 의례히 찾아드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는 가슴이다. 그러나 이곳 생활에서 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외로움과 싸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저 맥박이 뛰는 것과 같은 벽시계를 가끔 바라보며 한결같은 똑딱 거림이건만 '더디 가느냐' 짜증을 내고 그리움에 지쳐 저절로 울음을 터뜨릴 마음뿐이니. 이를 싫어하는 또 다른 내가 온통 머라를  지배하는 순간순간이 아닌가.


아직 아침 시간이다. 똑똑똑. 누가 방문을 열라고 두드린다. 안경을 쓴 젊은 이가 방으로 들어온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이 산 아래 입구에 있는 교회 담임목회를 하는 송칠현 목사."라고 했다. 소문을 듣고 한 번 만나 대화를 나누려 들렸다고 했다. 또 다른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어떤 친구가 무모하게 장기간 금식을 한다는데 20일을 지낸 형상은 어떤 모습인지 관찰하려는 시선은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너무 예민한 탓인가. 교단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또래의 나이였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 좋았다. 대화를 마치며 바리톤 색소폰 같은 중후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헤어지다. 감사한 마음이다. 젊고 씩씩한 일꾼의 가는 길이 귀하게 열리기를 기원하다.


아침 산책을 마친 후 위, 아래로 오가던 거처를 아래 낮은 집으로 옮겼다. 가까운 거리일지라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잠깐 현기증이 나면서 아찔해진다. 얼른 벽에 기대어 정신을 가다듬고 움직이는 오늘이다. 육체는 점점 약해짐을 느낀다. 그럴지라도 정신은 오히려 맑고 깨끗함을 경험한다. 몸무게를 측정해 볼 수는 없으나 5kg은 줄었으리라 짐작한다. 


따스한 봄볕이 온누리를 감싸는 날이다. 오랜만에 손수건, 양말을 비롯 모아두었던 속옷 등을 갖고 빨래터로 나가 흐르는 물에 겨울의 때를 실어 보낸다. 내 마음의 오염된 얼룩들도 말갛게 씻겨지기를 바란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면 좋겠다.  22일 월요일이 기울다.


변덕스러운 봄날씨로 3월 23일 아침이 열리다. 때아닌 눈이 하나, 둘 휘날리며 차가운 방 안을 더욱 옥죄이고 있다. 담요를 뒤집어써도 속에서부터 떨려오는 추위를 달래며 씨름을 한다. 혹시 햇볕이 따뜻할까 담벼락에 기대보아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싫어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성경을 펼친다. 피곤해서 덜 읽기로 했었다. 오늘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읽고 신약 마태를 읽었는데 이곳에서 신약은 세 번째 읽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다행히 아궁이에 불을 때 종일 얼었던 몸을 녹이며 석유 등불 밑에서 일기를 쓴다. 하루하루가 기적이라 여겨진다. 욕심, 불평, 원망이 모두 사라지고 감사함 뿐이다.  바로 옆 방에 <형춘>이라는 스무 살의 청년이 있다. 내 방을 따뜻하게 데워 준 고마운 손이다. 정신 휴양을 위해 1년 전 이곳에 왔는데 너무나 순진하다. 어쩌다 그 방에 가면 밥 한 그릇에 김칫국 그리고 신 김치가 전부인 쟁반 식탁을 앞에 놓고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하루 세끼 똑같은 반찬인데도 조금도 불평 없이 감사한 맘으로 먹고 있으니 행복해 보인다. 금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내에게 김칫국을 끓여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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