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일을 벌인다.
앞의 글에서 단순명료한 것이 좋다고 실컷 글을 써놓고는
왜 복잡한 수업 자료를 다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기껏 준비해 놓은 자료가 있는데 그냥 재미가 없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아주 의미있는 내용이다만
내가 재미없으면 듣는 학생도 물론 재미가 없을 것이 뻔하니
수업 자료 구성을 계속 손을 보고 있다.
원래 손을 대면 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것이 속성이다.
그 출발은 수업 준비물 키트 때문이다.
강의 초반 준비물을 신청하라했는데 예산 규모가 애매모호해서(많이 작다.)
키트 중에서 개수가 많은 것으로만 신청을 해두었다.
물론 내돈내산으로 추가한 것도 있다만(M&M 초콜릿, 행성 막대 사탕 등)
이제 혈액형 DNA 팔찌와 손가락화석 키링 만들기가 남아있다.
지난번 원소기호 키링과 함께 이번 강의에서
총 3개의 기념품이 제공되는 셈이다.
그런데 너무 마지막에 이 실험을 하면
보란듯이 자랑하면서 가지고 다닐 시간이 부족해지니
11월 중에 두 종류의 실험을 하려고 구성하다보니
실험과 강의 내용이 잘 매치가 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므로
혈액형 키링과 이어서는 유전과 생명과학부분을
손가락 화석과 이어서는 자연사박물관 관련 이야기를 해볼까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기껏 과학에 있어서의 큰 규모와 작은 규모에 대한 자료를 다 만들어두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다시 제로에서 강의 준비를 시작해야만 한다.
새로 맡은 연구도 발동이 걸려야하고
이사도 준비해야하는 이 어려운 시점에
굳이 힘든 길을 가려하는 내가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만
더 좋은 길이 보이는데 시도하지 않는 뻔뻔함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할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 밖에.
단순명료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손톱을 짧게 단정하게 자르고
내일 먹을 소고기 무국도 끓여두고
화장실 청소도 해두고
이제 이 글을 쓰고는 강의 준비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마침 놀아달라고 나를 쫓아다니면서 보채던 설이도 초저녁잠에 빠져들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막 바꾼 강의안이 학생들에게 더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는 내 판단이 정확하기를 기대해본다.
오늘은 야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