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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설이에게 이사란?

괜찮다. 너에게는 내가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번 이사 준비 과정 중에 아픈 남편만큼 신경이 쓰고 있는 점은 고양이 설이이다.

영역과 공간에 유독 집중한다는 고양이의 습성도 그러하고

설이는 외유내강형이 아니고 외강내유형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당당해보이지만 겁이 완전 많다.

이런 것도 보호자를 닮나?

이제 설이의 보호자는 나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집에 데리고 온 것은 물론 아들 녀석이지만

내가 주 양육자이다.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다.

이곳으로 이사와서 코 앞에 보이는 나뭇잎의 흔들림과 가끔 보이는 곤충들의 움직임과

빗소리나 바람소리를 즐기던 그 날들이

이제 딱 4주 남은 셈이다. 물론 설이는 모르겠지만.

이번 이사는 18층 고층으로 가니 얼마동안은 이곳에서의 창밖 모습들이 마냥 그리울 수도 있겠다.

많이 많이 봐두렴.


제일 큰 변화는 방이 많아진다는 점과

돌아다닐 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일게다.

그만큼 파악하고 탐방해야할 곳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니

나는 설이가 어디있는지를 찾는데 시간이

지금보다 두배는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기들이나 고양이나 무언가 소리없이 조용하게 있다는 것은

사고를 치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암묵적인 힌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방 두 개에 들어가있는 막내 동생의

조치원집 물건들에게 아마도 엄청 흥미를 보일 듯 하다.

그 중에 조카와 제부가 열심히 만든 레고들이 있는데 그것을 건드릴까가 걱정이니

장식장에 유리를 만들어두어야 할 것 같다.

중문이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설이가 튀어나갈지 모른다.

그 녀석의 순간 스피드는 대단하나 겁쟁이임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이처럼 고양이 한 마리가 이사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않다.


설이가 사용하는 5층 높이 캣타워의 방석을 한번 빨고 싶은데

손빨래밖에는 방법이 없을 듯 하여 아이디어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손빨래는 가능한데 건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냄새가 날 듯 해서이다.

차라리 청소기로 털과 먼지만 흡입하고 말까 하는 마음도 있다.

어제는 이사 대비 더 쾌적한 용변처리기를 아들 녀석이 배송시켰고

자동으로 시간이 되면 사료가 내려오는 기기를 다시 구입해볼까 생각중이다.

내가 집에 없을 경우 남편이나 동생이 먹이를 주어야 할 상황에 대비해서 말이다.

그것을 사든 안사든 밥 주는 매뉴얼을 하나 만들어 부착해두기는 해야겠다.

누가봐도 설이 케어가 가능한 지속가능 시스템을 구현해야한다.


제일 걱정인 것은 이사 당일날이다.

물론 차 옆 자리에 태울 것이고 내가 딱 붙어있을 예정이고

간식도 가지고 갈 것이지만

설이의 무서움과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을 보는 일은

나를 보는 듯 하여 마냥 슬프기만 할 것 같다.

물론 서울을 떠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인지까지는

고양이 설이는 느끼지 못할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마라. 설아.

나도 있고 너를 이뻐라하는 이모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오빠를 자주 못보는 것은 이해하렴.

여자 친구를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하단다.

지금처럼 너는 내 옆에 딱 붙어있어주면 된단다.

(사진은 지금 강의 나가는 대학교 학생식당 벽에 붙어있는 다양한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들이다.

밥을 먹으면서 설이와 가장 닮은 고양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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