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자라고 할 때와 여성이라고 할 때의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남자라고 이야기 할 때는 별 말이 없는데 여자라고 하면 무시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라고 존중의 뜻을 포함해서 불러달라고도 한다.
나는 모르겠다.
<인물로 알아보는 과학의 역사> 강좌에 젠더이슈를 넣을까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넣은 이유는 역사속의 여성과학자들은 정말 많은 불이익을 당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연구 참여부터 역할과 결과 인정까지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던 분들이 너무 많은데 제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은 마리퀴리 정도이니 안타까움이 들었고
지금도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도 알리고 싶었다.
그래도 남학생들도 있고 젠더 감수성은 모두 다 다르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과거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엄청 많이 좋아졌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들의
그 기간에 대한 우대는 필요하다고
군입대로 인한 기간에 대한 보상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잘 받아들여졌기를 기대한다만 젠더에 대한 언급은 항상 어렵다.
어느 편을 든다는 인식이 그리 무서운 것이다.
여자라서 여자편을 든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많이 힘들다.
어제. 오랜만에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의 경기를 보았다.
거의 십 년만에 야구를 보는 입장으로 돌아왔으니
국대 경기는 2015년 이후 처음이지 싶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12 우승이
우리나라 야구 전성기 시대였다.
그때는 눈을 손으로 가리고 기도하면서 봤었다.
그 뒤로 왜 야구 인기가 내리막길을 걸었는가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만
야구 선수들에게서 절실한 눈빛이 사라졌음을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다시 자칭 야구 전문가로 돌아온 이유는 <불꽃야구>의 영향이다.
야구 전성기 시대의 그들이 이제 다들 늙어서 은퇴를 하고도
아직 그때 그 눈빛을 보여주면서
(가끔 말도 안되는 에러를 하기도 한다. 그때는 눈을 흘기며 욕을 한번 해주기도 한다)
힘든 경기를 간신히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제 한일전 국대 경기를 보았다.
담담하게 볼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게는 안되더라.
주심이 그 거대한 미국 야구에서 유리 천장을 무너트린 여성 심판 1호라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체구가 남자치고는 아담하다했다.
<유리 천장 :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야기를 안 들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보호장구로 감싸고 있으니 성별을 알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헤치고 나온 여자 심판의 역량이
영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우리나라 경기는 요새 ABS 라는 AI 시스템을 활용하니 스트라이크에 대한 판정 불만이 있을 수 없는데
이 경기는 그것이 없으니 분명 잘 들어간 것 같은데 볼이라 판정하는 심판의 눈에 의심을 갖게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땅볼 판정을 미스하고
(마운드에 맞았는데 투수에게 맞았다고 하고.
물론 모른척한 일본 투수가 더 나쁘다.)
돔 구장 천장에 맞았는데 그걸 놓치고
로컬룰 숙지도 하지 않았고
그 이후도 오락가락하는 볼판정에
가뜩이나 일본전에 긴장한 경험 부족한 우리 선수들은 멘탈이 붕괴되었다.
우리선수들 편을 드는것이 맞다만
야구는 아니 모든 일은 멘탈이 좌우한다.
내가 화가 난 점은 이런 수준의 여자 심판을 이벤트성으로 주심으로 세운 관계자들이다.
그 여자 심판을 꼭 쓰고 싶고 경험치를 부여하고 싶었다면
2루심 정도를 썼어도 화제성 몰이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게 그 심판에게도 더 나은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실력으로 승부해야지 이벤트로 몰아가는 것은 진정한 여성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니다.
결국 그 심판은 아마도 심판 내내 어제의 졸렬한 경기 운영에 대한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녀의 심판으로서의 행보를 도와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후배 여자 심판의 길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직장에서 여자라고 더 우대해달라는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다.
여성 대표인 직장에 공개 입찰에서 메리트를 주는 것도 마땅치 않다.
직업이라는 전선에서는 오로지 실력으로만 가늠하는 것이 맞다.
어제 그 여자 야구 심판은 그런 점에서 실력을
더 키우고 오는 것이 맞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여자인 나의 눈으로 그 여자 심판을 보았을 때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팀이 져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만
이 생각은 3대 3으로 팽팽하던 순간에 이미 남편에게 이야기한 내용이다.
야구에서의 모든 일은 첫타자 볼넷에서 비롯된다.
그 볼넷을 결정짓는 사람은 심판이다.
그래서 ABS를 사용하자고 하는거다.
심판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당분간 야구에서 여자 심판이 많아지는 일은 쉽지 않겠다.
경기 내용보다 심판 이야기가 백배쯤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유리 천장을 깨는 일은 오로지 그 분야의 최고 역량이 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업계 1호라는 위치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모나 배경 그리고 이벤트성 우대는 모두 사양한다.
이것이 진정한 여성학적 의미의 세계관이다.
우리나라의 여성학은 너무나 과거의 홀대와 불합리에만 몰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받지 못한 대우를 지금 몰아달라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런 말을 하면 분명 흘겨보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맞다. 여자의 적은 여자일지 모른다.
내용을 잘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 천장을 깨는 일은 분명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 기반에는 그 위치에 맞는 실력과 경력이 필요하다.
우대받는 삶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어제 그 심판은 야구를 잘 모르는게 분명하다.
오래본 구경꾼 수준인 내 눈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