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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가을 느끼기와 보너스2

낙산공원은 색다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내 마음속의 올해 가을과의 이별여행이다.

다음 주 영하의 기온이 예보되어 있으니

자연과학적으로나 입동이 지난 절기적으로

가을을 보내고 겨울임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런 마음 자세로 낙산공원을 향해 집을 나선다.

지금까지는 매번 혜화역에서 내려 걸어올라갔으나

체력을 아끼고 싶어서 꾀를 내본다.

동대문역에서 종로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간후 내려올 심산이다.


그런데 동대문역 지하에서 잠깐 휴대폰을 본 순간

길을 잘못들어서 2번 출구로 나갈수가 없다.

세상에나 7,8,9,10 번 출구방향으로 나오면

앞 출구쪽으로 지하세계에서는 빠꾸가 안된다.

그렇다고 다시 티켓을 끊을수는 없으니

불평으로 입을 쭝얼쭝얼하면서 밖으로 나와 2번 출구를 찾아본다.

어라. 1번 출구는 찾았는데 2번 출구가 안보인다.

보통 지하철 출구는 1번 출구 맞은편에 2번 출구인데

동대문역은 아니다.

같은 쪽을 쭉 살펴봐도 3번 출구만 보인다.

도깨비에 홀린듯하다만

3번 출구 50미터 앞에 2번 출구가 숨어있고

그 곳에 낙산공원이 종점인 마을버스가 선다.

정신줄을 잠시 놓으면 이렇게 된다.


마을버스 승객은 나처럼 오랫만에 방문하는 사람은 전혀없고 거주자들만 있다.

신기하다.

어제 남산공원을 올라가는 버스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케데헌의 영향으로 낙산공원이 핫플이 되었다던데 아닌가?

내려올때쯤 알았다.

이곳은 일몰 즈음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다는걸.

야간 관광 명소라는걸 말이다.

참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동대문역을 크게 한바퀴 돈다.

반대편에서 타시라.

시간 절약을 하시려면.


낙산공원은 남산공원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둘다 남산타워도 보이고

서울 시내도 내려다보이고

한양순성답사길이기는 하다만.

올 단풍으로만 비교한다면

남산공원의 객관적 우세승이다.

그러나 낙산공원은 근처 거주민들의 생활감이 묻어있다.

뭐라고 딱히 한정지을수는 없는 미묘한

자연과 현실과의 접점이 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화벽화마을로 내려왔고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허비져서

아무도 없는 멋진 뷰의 2층 카페를 독채 전세내어

카프치노와 몽블랑 패스츄리빵을 먹었다.

인증샷까지는 멋졌는데

패스츄리빵은 칼질이 안되어서

손으로 뜯어먹으니 영 우아함이 살지 않았고

신입알바가 만들어준 카프치노는 너무 오랫동안 정성껏 크림을 내려서 따뜻함이 2프로 부족했다만

가을과의 멋진 이별여행식이라 생각했다.

그 멋진 카페에서 엄청 큰 목소리로 떠들던 아주머님들 반성하시라.


이화벽화마을에서의

벽화그림과 틈새 식물 구경을마치고

(오늘도 사진은 50장쯤 찍었을거다.)

귀갓길에는 DDP 에서 열리는 유기농마켓에 들린다.

가끔 일정이나 동선이 맞으면 들리는데

여기도 겨울에는 열리지 않고

나는 이사 예정이니 아마도 마지막이 될 확률이 크다.

마침 마켓 운영관련 설문을 해달리니 기꺼이 응한다.

많이 다녀봤으니 응답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 댓가로 제주 노지감귤과 현미를 한 팩 얻었

이것이야말로 보너스가 틀림없다.

유기농 건강한 맛의 들기름 오이지무침과

올해 마지막이라는 노지 재배 고수

그리고 고구마 네 개를 사가지고 귀갓길이다.

노란 단호박이 눈에 밟혔으나

남편과 둘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가을과의 이별 여행은 다행이 오늘도 성공적이다.

이 글은 브런치 사상 최초로

지하철과 마을 버스 합동 글쓰기이다.

이별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가을을 떼어놓지는 못했다.

추위에 손발 동동 시리고 귀 시렵고

호호 입에서 김이 나와야만 그제서야

아이쿠 하고 가을을 놓게 될지 모른다.

매 해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어제 오늘 모두 오전에 12.000보 이상을 걸었으니 오.운.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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